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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및 인터뷰



인터뷰 지진현장에서 꽃 피는 십자가의 열매

swm 2024.03.29 10:07 조회 수 : 85

  • 체틴 사역자를 통하여 많은 영혼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고, 특별히 작년 지진구호 사역들 통하여 심은 사랑의 씨앗들이 주님의 때에 풍성한 구원의 결실을 맺게 하소서
  • 체틴 사역자가 늘 성령충만하게 하시고, 체틴의 온가족(특별히 사위 탄젤 사역자, 딸 헬린 사역자)이 말씀과 기도 가운데 성숙한 복음 사역자들로 계속 세워지게 하소서
  • SWM CP(Church Planter/교회개척자)들 및 튀르키예의 모든 현지 사역자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로 온전히 연합하게 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삼순과 아마시야를 섬기시는 체틴 장로님.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1973년 시르낙의 베이투세밥에서 태어난 체틴 보락입니다. 제 인생의 절반은 하카리에서, 절반은 반에서 보냈습니다. 제가 반에 사는 동안 우리 부족은 큰 부족이었어요. 그리고 제 아버지는 부족의 지도자였죠.

부족의 위치로 보면 우리는 모든 것이 잘 정돈되어 있었고, 삶 전체가 좋았습니다. 반에 있을 때 한 미국인 형제를 만났는데 그가 성경을 주더군요. 저는 무신론자였고 신보다 사람을 더 숭배했고 지도자가 있었고 그 지도자를 더 숭배했습니다. 삶은 이렇게 흘러갔고, 정당의 당원으로 정치적 사건으로 몇 번 감옥에 갇혔고 이런 식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 미국인 형제를 만났는데, 그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그를 좋아하기 시작했지만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항상 저와 저의 백성들을 배신했기 때문에 믿지 못했습니다.

저는 항상 그를 스파이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저에게 성경을 선물로 주었고 성경을 읽고 있는지 물었지만 저는 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제가 읽고 있다고 말했고 저는 그를 속였습니다. 어느 시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꿈을 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형제가 '또 읽고 있냐'고 물었고 '네 이번에 읽었어요' '어디서부터 시작했냐'고 물어서 '요한복음부터 시작했어요'했고 지금도 계속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아내는 저보다 2년 후에 믿게 됐고 물론 아내와 저 사이에는 모든 가정이 그렇듯이 많은 문제가 있었는데 우리의 문화에서 보면 아내는 항상 남편을 존중하고 항상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저보다 조금 늦게, 2년 후에 믿게 되었는데 제가 변한 것을 보고 믿게 되었습니다. 내 신앙 생활에서 가장 어려움이 되었던 건 가족과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나를 우습게 여기고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굽히지 않고 계속해서 주님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얼마 전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세미나에서 아흐멧 아비가 나눔을 가졌습니다. 그는 믿는 형제들로부터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저희도 같은 일을 겪고 있어서 격려가 되었습니다. 제 신앙생활도 사실 눈물겨운 시간이었어요. 아이들에게 많이 말하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아이들은 제 간증을 잘 알고 있어요. 가족들로부터 많은 압박을 받았고 박해도 받고 폭력도 당했고 제 위치로서는 부족장이 될 위치인데 기독교를 선택했어요. 부족장이 되면 제 뒤에는 항상 무기를 가진 사람들과 같이 다니며 사치스러운 삶을 살게 되지요.

부족의 지도자는 항상 그렇습니다. 저는 형제 자매들보다 자기 주장이 강했고, 무기를 잘 다루고 잘 싸웠고 모든 면에서 앞섰습니다. 그래서 친척 회의에서 저를 지도자로 선택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매우 강력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제 뒤에는 적어도 3000 4000 명의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예수를 믿게 된 후 모든 사람이 저를 떠났고 저는 혼자 남게 되었으며 그것은 저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살기 위해선 벌어야 하는데 이전엔 직업이 있었지만 얼마 동안은 실직 상태였습니다.

저희는 밀수꾼이었습니다. 담배를 가져오고, 휴대폰을 가져오고, 다른 물건을 가져와서 팔았습니다. 그래서 돈이 있었습니다. 차가 네 대 있었고, 집이 있었고, 호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잘 사는 가족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것을 떠났습니다. 믿은 후 저는 대부분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악한 돈이어서, 세금을 내지 않는 돈이라서 잃었을 것입니다. 제 자녀들은 이 문제로 인해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저는 돈을 잃고 자산을 잃었지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회복을 시작했고, 지르베는 기독교 출판사가 있었는데 거기서 몇 년 동안 봉사를 하다가 교회 봉사로 전환했습니다. 그리고 반 지진도 있었고, 반 지진에서 3개월, 4개월 동안 천막 세우는 사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계속하려고 했는데… 주님을 찬양합니다. 좋은 날과 나쁜 날이 있었지만 그것을 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의 이름이었으며 실제로 이런 식으로 성공했습니다.

지금 저의 삶은 사실 삼순에 오는 것 같은 꿈이나 삼순에서 봉사하는 꿈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항상 사역을 하면서 제 민족을 섬기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제 꿈이었습니다. 모든 도시에 교회를 만들고, 내 민족이 있는 모든 도시에 가정 공동체를 만들고, 그들을 섬기고, 나와 같은 삶을 살도록, 그들이 예수처럼 살도록 - 왜냐하면 이전의 삶은 그렇게 완벽한 삶은 아니었지만 그들을 구원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우리 지역에서 좋은 봉사를 해왔고, 그곳에서 좋은 봉사를 해왔습니다. 저는 27년 전에 삼순에서 군 복무를 했는데, 아주 힘든 시기를 보냈고, 다시는 이 삼순에 오지 않겠다고 큰 다짐을 했는데, 지금은 삼순에 있습니다.

제 딸 중 하나가 여기서 결혼해서 삼순에 왔을 때 한 형제가 "너는 삼순에 오고 싶니?" 라고 물어봐서 "아니요, 저는 여기 반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저와 제 가족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예수님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셨고, 내 민족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이 주님의 말씀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저는 삼순에 왔고, 처음에는 적대적인 두 민족을 섬기고 있었는데 지금은 원수이었던 두 민족을 섬기고 있습니다.

지금도 같은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시아의 사역은 매우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신자들을 양육하고 있고, 새로운 젊은 형제 자매들이 함께하고 있고 우리는 그들을 양육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마시아 교회의 건물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역이 매우 활발하고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있음에 주님을 찬양합니다.

처음 지진지역에는 왜 가셨고 얼마나 섬기셨나요? 그리고 어떤 마음을 품으셨나요?

처음 2023년 대지진 지역에 갔을 때 교회 형제자매들과 함께 가서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지진 지역에 가는 계획은 없었습니다.

이곳 지진지역에 도착한 후 오르한 형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딘가에서 지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곳 사람들에게 도움이 많이 필요하니 가서 봉사하자고 말했습니다.

섬길 자들이 왔고 여기에 함께 하는 형제들도 몇 번 같이 갔고 우리는 함께 그곳에서 봉사했습니다.

그 후 봉사는 더욱 많아졌습니다. 지진사역이 커졌을 때 우리는 형제 자매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케빈, 오르한 형제, 피터 형제와 이야기하여 여기서 봉사하고 싶은 형제 자매가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저는 전에 우리 도시인 반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봉사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그곳에서 봉사하고 싶었습니다.

처음 지진 지역에 갔을 때 제 마음에 큰 아픔이 있었고, 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봉사하고 싶었어요.

처음 지진지역에 들어갔을 때 느낌이 혹은 마음이 어떠셨나요?

지진 지역에 처음 갔을 때는 일반적인 지진으로 생각했지만, (도시) 안으로 들어가니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안타키아에 갔고, 하타이에 갔지만 아무것도 없었고, 거리에 들어갔지만 모든 것이 파괴되었습니다. 한 집 앞에 갔더니 한 남자가 외치고 있었어요. "엄마, 아빠, 가족들이 모두 여기 있어요. 저는 밖에 있었기 때문에 무서웠어요. 그들이 모두 여기 있어요.’라고…

힘겹게 한 여성을 구해냈습니다. 모두가 도와주었고, 모두 구해냈습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사실 건물이 무너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잔해 아래서 소리를 지르고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미 심리적으로 충격적이지요.

도와주려고 손을 내밀지만 아무것도 없습니다. “도와줘요 도와줘요”를 외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 후에도 계속 가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귀에서 도와달라는 그 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습니다.

가끔은 정말 미친 것 같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것 같아요. 하지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거기서 소리를 지르고 손을 뻗었지만 끌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너무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항상 가고 싶었고, 그들을 도울 수 있고, 고통을 조금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주님의 계획입니다. 가고 싶었지만 안 갈 수도 있지만 계속 봉사를 하다 보니 오히려 기운이 날 때도 있었어요.

여전히 가고 싶지만… 갈 수만 있다면 다시 가고 싶어요. 1년 동안 머물고 싶어요. 아이들은 다 컸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모두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은 사람을 변화시키세요. 지금은 가끔 지진 지역에 가면 앉아서 울기도 하고 기도도 하지만, 대부분 주님이 제 돌 같은 마음을 너무 깨뜨려서 이제는 모든 일에 울어요.

슬프고 대부분 슬퍼요.

저는 정말 강한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매우 부드러워졌습니다.

6개월 정도 지진 지역에 들어가서 섬기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이나 교회 지체들의 반응이 어땠나요?

사실 처음에는 일주일, 사흘 정도 봉사하고 왔다 갔다 하려고 했는데 장기화되니까 아내한테 '좋다'고 했더니 '어차피 이런 봉사 좋아하잖아' 말했습니다. 네, 봉사하는 거 정말 좋아해요. 그리고 처음에는 지진 지역이고 지진이 계속 일어나니까 우리도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조금 망설였어요.

아마 저희도 조금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아내도 영향을 받았죠. 제 가족, 아이들이 저를 잘 지지해줬어요. 로샤트와 제 아들도 한 달 동안 함께 봉사하러 왔기 때문에 망설임이 없었어요. 우리는 모든 캠프를 방문했고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가족들이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줬어요.

형제자매들이 항상 제 안부를 묻고 전화해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물어봐서 교회로서 저를 지지해줬어요.

그곳에서 경험하신 일들을 몇 개 더 나눠 주실 수 있으신가요?

나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은 사람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만 그들을 돕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80~90세 정도 된 할머니 한 분을 도우러 갔는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담요를 드렸더니 할머니가 저를 안아주셨어요. 할머니는 저에게 키스하고 안아주셨어요.

저는 왜 그러시냐고 물었죠. 그녀는 "지금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라고 하셨고 저에게 "어디서 왔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삼순에서 왔다고 말했습니다. 저에게 "무슬림이세요?" 하시길래 저는 "아니요,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그녀는 나를 다시 껴안고 키스를 시작했고 저는 매우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담요를 주었습니다. 그 담요는 제 것이 아니라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준 것이었습니다. 단지 주님은 저를 사용하셨고 저는 그녀에게 담요를 드렸습니다. 그 후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울면서 '항상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거기서 큰 감동을 받았어요. 정말 다정한 분이셨거든요.

가지안텝에 있을 때 저를 감동시킨 또 다른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 차 뒤에 두 대의 차가 있었어요. 저는 항상 거기에 주차를 하곤 했는데 그 차가 계속 드나들었습니다. 저는 항상 모든 사람들에게 제가 기독교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봉사하러 왔고 이곳의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 동네 사람들은 저를 아주 안 좋게 보았습니다.

어느 날 봉사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큰 차는 그대로 두고 작은 차를 탔습니다. 돌아와서 보니 차의 헤드라이트가 모두 부서져 있었고 당연히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이 와서 조사했지만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경찰에게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봉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봉사하러 왔고,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왔고,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 왔지만 당신들이 하는 일은 옳지 않다고요. 그렇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주에 그들은 저의 검은 차 뒷면에 검은색으로 <알라 악바르>글자를 썼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몇 번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무섭지 않았냐고 말할 수도 있겠죠? 아니요, 저는 예수의 이름으로 봉사하러 갔기 때문에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섬기러 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봉사를 위해 그곳에 가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을 때, 즉 실제로 두려움을 극복했을 때 우리는 이미 끝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크게 두렵지는 않았지만 조금 불안했습니다.

우리의 봉사가 중단될까봐 걱정했을 뿐, 다른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았거나 복음을 받아드린 사람이 있었나요?

복음을 나누러 갔을 때 사람들의 빈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사를 나눴던 친구들과 대화를 시작했어요. 친근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고, 조금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제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고 '당신은 무엇을 믿느냐, 당신은 하나님을 믿는구나‘라고 그들은 항상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성경을 가져다줬어요.

그리고 그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는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곳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은 가장 어려운 곳에서 좋은 소식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과 주님의 말씀을 나누었고 그들은 저에게 더 많은 정보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잠시 앉아서 그들과 함께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물론 형제자매들을 가끔은 제가 그들에게 데리고 가서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기도 했어요. 한국 형제들도 와서 제가 그들을 데리고 갔어요.

거기에는 사무실이 있었어요. 거기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들도 우리와 함께 아멘을 외쳤어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들도 아멘을 했어요.

지금도 그 형제자매들은 시간이 지나도 전화로 계속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제가 그곳에 오기를 원하고 여전히 저를 초대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전화로 말씀을 나누기도 합니다. 이것이 제가 그들과 연락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지진 전후로 기독교인들과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고 들었는데 어떤 변화를 보셨나요?

지진 지역에서 사역하면서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우리는 기독교인입니다, 당신을 도우러 왔습니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자유롭게 전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규칙이 있어서 규칙을 어기지 않기 위해 말하지 않았지만, 항상 주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의 마음은 매우 달랐습니다.

전에는 정말 달랐어요. 그들은 기독교인들에 대해 매우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들이 텔레비전을 통해서 기독교인을 보고 있지요. 그들은 TV에서 기독교인들을 술, 매춘, 도박, 모든 것에 자유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봤어요. 그들은 우리를 알아봤어요. 그들은 우리가 살아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기독교인들 사이에 살고 있었어요. 그곳에 교회가 있었지만 그들은 몰랐어요.

그 후 우리는 그들을 섬기는 동안 그들에게 좋은 간증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기독교인이라고 말하지만 여러분이 아는 방식은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설명했지만 이 쪽을 기독교인이라고 부를 때 두 가지로 나누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자녀와 기독교인. 그런 다음 그들은 믿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습니다. 그들은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물론 이것은 사람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그곳 사람들이 잘 일하고 좋은 일꾼이 있다면 그곳의 수확량은 매우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처음에 그곳에 갔던 사람들은 힘들었거든요. 하지만 지금 그곳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씨앗을 모아야 합니다.

이것으로 봉사가 끝났습니다. 이제 열매를 거둘 시간입니다. 그러나 한 번에 한꺼번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일어납니다. 사람들의 관점은 80%가 바뀌었습니다. 100%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관점이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과 후에 우리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처음 갔을 때 그들은 우리에게 '무슬림은 오지 않고 기독교인들이 더 빨리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했어요.

그러므로 교회로서 우리는 좋은 섬김을 제공해야 하지만, 교회가 서로 경쟁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서로가 좋은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교회들이 서로 경쟁하고 있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내가 더 많이 봉사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좋은 간증이 아닙니다. 이것이 제가 본 모습입니다. 사실 좋은 사역이 있다면 동쪽과 남동쪽에서 큰 수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해서 불편해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나요?

그곳을 섬기는 동안 한두 명의 시리아인을 만났는데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습니다. 함께 갔던 한두명의 한국인 형제들을 보면서 여기 왜 왔냐고, 이런 불결한 건 뭐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장에서 샀으니 이 교도의 불결한 물건이 아니라고 했어요.

그들을 도울 때 저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외국인 형제들이 제 주위에 있었기 때문에 ‘당신들은 기독교인이에요’라고 말하면서 안 가져갔어요. 제 얼굴만 봤다면 그들은 그것을 가져갔을 거에요.

기독교인이라고 가져가지 않은 두 세 명만 만났고 많지 않았어요. 그게 그들의 반응이었어요.

그들이 저를 혼자 봤다면 가져갔겠지만 낯선 사람을 보고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했고 모든 것이 불결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 지역에 다시 갔을 때 그들은 기독교인들이 설치한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었어요

저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기독교인들과의 관계는 어떠세요?"라고 물었고, 그들은 '아주 좋아요, 우리를 도와줬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초창기에는 우리를 모욕했잖아요'라고 했더니 그들이 '내가 잘못 판단했다'고 하더군요.

그들의 집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어요. 좋은 간증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왜 이런 끔찍한 지진이 일어났냐고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사실 그런 질문들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서로에게 '너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런 지진이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모두 주님의 일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손에서 나온 것입니다.

주님은 원하시면 멸망시키시지만, 오히려 우리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주님께는 계획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 지진도 마찬가지고 다른 지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이 하셨다는 것을 100% 믿습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우리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이런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뭔가 잘못하면 건물이 무너진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설명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슬림들은 모든 것을 훔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것을 보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으니 주님은 이 백성을 위한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곳이 기독교인들이 처음 태어난 곳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계획이 있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아마도 여기에 가장 큰 계획이 있을 것입니다. 완전히 같은 주제는 아니지만 조금 더 가까운 주제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어떤 그룹은 우리보다 먼저 그곳에 왔고, 어떤 그룹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곳에 왔습니다. 그분은 '준비하세요. 주님이 오십니다. 우리는 '좋아요, 이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졌지만, 좋은 소식을 미리 전하고 나서 주님의 재림에 대해 이야기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 심지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도 농담을 했어요.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실 겁니다." 믿으시나요? 믿으면 주님이 오실 것입니다.

지진지역을 향한 당신의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저는 항상 그 지역을 위해 기도하고 있고, 그 지역이 정말… 주님께서 그 사람을 인정해주시고 그곳에서 봉사하는 형제 자매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정말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자녀들이 한 지붕 아래 함께 하며 함께 봉사하기를 원하며 항상 그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좋은 간증을 하면 우리 형제 자매들이 우선적으로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형제자매들이 좋은 간증을 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잘 전하지 않는다면 저의 봉사는 헛된 것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의 사역도 헛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결실은 사막의 열매와 같을 것입니다.

돌 사이로 떨어지는 열매입니다. 물이 없는 땅에 떨어진 수확입니다. 그곳의 형제자매들이 함께 모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저는 항상 그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추가로 지진구호사역과 관련하여 더 나누고 싶으신 얘기가 있으신가요?

가장 감사한 것은 주님 안에서 새로운 형제자매들을 만난 것입니다. 항상 좋은 형제자매들을 만난 것은 아니지만 함께 봉사한 모든 형제자매들에게서 정말 큰 격려와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저를 축복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밤에 잠도 못 자고 여행하면서 힘들 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모든 분들을 정말 사랑했습니다. 제 이름을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존 형제는 포기하지 않는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에 저는 많은 격려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저는 항상 "너는 아주 좋은 봉사자입니다."라고 말했지만, 저는 스스로 그를 리더로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물론 제 목사님은 오르한 형제, 케빈 형제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있는 모든 분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들은 저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셨죠. 그리고 이 단체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주님의 평화와 축복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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