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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이란



국외 이슬람의 현황 1 (유럽, 중국)

swm 2010.10.08 07:05 조회 수 : 21

국외 이슬람의 현황 1 (유럽, 중국)


 국외 이슬람의 현황 1 (유럽, 중국)

여러분은 유라비아”, “이슬라모포비아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유라비아는 유럽과 아라비아의 합성어이며, 이슬라모포비아는 이슬람공포증을 뜻하는 말입니다.

두 단어 모두 이슬람교 확산에 따른 유럽 교계들의 경계심리를 반영하고 있는 신조어들입니다.

이 신조어가 말해주듯,  실제로 유럽 전역은 이슬람의 강한 영향권 아래 놓여있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북서쪽에 위치한 레스터는 존 위클리프 목사가 11년 동안 목회를 하였던 유서깊은 기독교 도시입니다.

하지만 현재 이곳은 영국에서 교회 건물이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로 바뀌는 사례가 가장 많은 지역 중 한 곳으로 뽑히고 있습니다.

레스터의 하이필드 지역은 무슬림 신학교육기관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 역시 교회 건물이 무슬림 단체에게 팔리면서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인터서브라는 선교회에 따르면, 현재 영국인구 중 무슬림은 200만명 정도라고 합니다.

이 중 반 정도는 런던에 자리잡고 있으며, 런던의 한 이슬람 사원에는 무슬림의 수가 5년전에 비해 2배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통계는 영국 내에 무슬림의 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영국 뿐 아니라 독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 쾰른의 에린펠트 지역은 인구의 10분의 1정도가 무슬림입니다.

도시 중심부에는 터키인 무슬림들이 2000명 이상 모이는 모스크가 자리잡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듯 유럽 내에 무슬림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외국인 무슬림들이 유럽내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며,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 노동자, 경제인 등의 외국인 무슬림들은 유럽 내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모스크 건립을 추진하는 형태로 이슬람의 세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 이슬람이 확산되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그렇기에 이슬람 전문가들은 현재 유럽의 무슬림 확산이 30-40년 뒤 한국의 모습일 수 있다고 예측하기도 합니다.

유럽의 경우, 최근에는 무슬림들이 모스크 뿐 아니라, 무슬림 교육기관을 설립하거나 정∙ 재계에서 활동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또한 문화강좌나 코란학교 등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도 합니다.

한편, 이러한 무슬림의 확산 현상은, 형태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비공식 자료에 의하면 2008년 현재, 4200만명의 무슬림이 중국에 있다고 합니다.

중국 종교사무국에 따르면 모스크는 3만여개, 종교지도자인 이맘은 4만여명에 이릅니다.

실제로 중국은9번째로 무슬림 인구가 많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중국의 이슬람 확산은 한국, 유럽 등과 달리 가족, 민족 중심의 자연적 증감에 따른 것입니다.

56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에서10개의 민족이 이슬람을 종교로 가지고 있습니다.

10개의 민족중 위구르, 카작, 타작족 등은 고유의 풍습과 언어 등을 유지하며 중국에 동화되기를 거부하는 무슬림들입니다.

이들은 10세기 아랍제국의 지하드를 통해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되었고, 1955년 중국 공산 정권에 의해 위구르 자치구에 흡수되었습니다.

반면, 후이, 싸라, 둥샹족 등은 완전히 중국화된 내륙 무슬림들입니다.

이들은 서기 651년에 아리비아와 페르시아에서 교역을 목적으로 들어온 무슬림들을 통해 이슬람을 받아들였고, 중국 전통문화를 이슬람교와 결합시켰습니다.

이들은 중국 전통의 유교로 코란과 경전을 해석해 이슬람교를 중국화시켰습니다.

이 두 그룹은 이슬람을 받아들인 경로는 다르지만, 이슬람이 가족과 민족 공동체를 형성하는 기반이라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그렇기에 직접적으로 선교활동을 하지는 않지만, 민족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그 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늘 살펴본 것처럼 형태는 다르지만, 분명 유럽과 중국에서 이슬람은 크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슬람의 본산지라 할 수 있는 중동 국가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다음 시간에는 그 지역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글: 신 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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