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땅콩 대통령으로 잘 알려진 지미 카터 전직 대통령의 장례식이 1월9일에 있었습니다. 4년 대통령의 임기 동안 이룬 업적보다도 대통령 이후 고향의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50년 이상 섬겼을 뿐만 아니라 평생 봉사하는 삶을 살았고 국제 분쟁을 중재하고 인권을 신장시킨 공로로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 장례식에서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감동은 1976년 미국 대선에서 정치적 라이벌이었지만 먼저 사망한 제럴드 포드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 낭독한 추도사의 내용이었습니다.
1976년 대선 당시 서로를 비방하고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카터와 포드는 그후 40년 이상 미국 대통령 역사 가운데 유례없는 우정을 쌓아 생전에 두 사람 중 누가 먼저 눈을 감든, 서로의 장례식에서 추모사를 읽자고 미리 약속했던 것입니다.
포드의 추도사에서 “정직과 진실함은 지미 카터라는 이름과 동의어이며 카터에게 정직은 그가 열망하는 목표가 아니라 영혼의 일부였습니다. 아주 짧은 기간 지미 카터와 나는 라이벌이었습니다. 나와 지미 둘 다 선거에서 패배하는 고통을 겪었고 그것이 얼마나 쓰라린 경험인지를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적 패배가 주는 ‘자유’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이제 작별 인사를 건넬 시간이 왔나 봅니다. 지미, 우리의 재회를 고대하고 있으며 나눌 이야기가 많네. 집에 돌아온 것을 환영하네, 오랜 벗이여.”
초대 교회 일곱 집사 중 하나였던 스데반은 아브라함은 하란에 있기 전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이셨다는 설교 내용을 따르면(행 7:1-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메소포타미아 고향을 떠났고 하란까지 가서 그곳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 12:2) 이어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 약속하시는데 그의 나이 75세였습니다 (창 12:4).
아브라함에게 얘기한 하나님의 약속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며 10년이 넘도록 자식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해 항변합니다.
“주님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나의 상속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말씀하십니다(창 15:4).
하나님을 믿은 아브라함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창 15:6) 아내가 출산하지 못하자 그의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 이스마엘을 낳게 되는데 그의 나이 86세입니다(창 16:16).
비록 하갈을 통해 나은 아들이지만 86세에 아들을 갖게 되니 얼마나 기뻐하고 좋아했을까요? 저희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이후 15년 만에 늦둥이 아들을 주셨는데 셋째 이름을 요셉이라 이름을 짓고 색동옷을 입히고 귀여워하고 사랑하는 늦둥이의 기쁨은 가진 자만이 압니다.
저도 그렇게 기뻐하는데 86세에 아들을 얻은 아브라함의 기쁨과 즐거움이 어떠 했을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이 태어난 13년 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나이 99세에 다시 나타나셔서 1년 후에 사라를 통해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대로 그의 나이 100세에 이삭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게 되는데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지라(창 21:9) 영어로는 mocking인데 히브리원어의 뜻은 경멸하고 조롱하는 표현의 수단으로 학대의 의미가 있습니다.
동생 이삭을 보는 그 당시 14세 이스마엘의 입장은 어땠을까요? 지난 14년동안 아브라함의 모든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했는데 이삭이 태어나면서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이 이삭에게 집중이 되니 그 마음에 시기와 질투가 불같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너만 아니었으면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 아버지의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었는데 너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다’. 이삭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경멸하고 조롱하는 모습을 목격한 사라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죽일 수 있겠다 생각하고 아브라함에 달려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 말합니다(창 21:10).
이스마엘도 자식인데 쫓아낼 수 없는 큰 근심 가운데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밤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이후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빵 한 덩이 물 한 가죽부대를 주고 광야로 쫓아냅니다.
14년 동안 함께 살았던 아들 이스마엘을 생각해서라도 그의 소유 중에서 양과 소와 낙타를 주고 저 멀리 떠나 엄마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라 하고 재산을 나누어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요? 광야로 쫓아낸 것은 거기에서 죽으라는 것입니다. 한 순간에 엄마와 함께 버림받은 이스마엘은 아버지를 향한 분노와 이삭을 향한 미움이 그의 평생 한을 품고 살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왜 그렇게 매정하게 그들을 광야에서 죽으라고 했을까요? 장차 이삭의 자손을 통해 인류의 구원을 위한 메시아 탄생, 모든 민족이 복을 얻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어쩌면 이삭의 자손을 미워하고 방해하는 이스마엘 자손의 모습을 하나님과 대화에서 알았을까요? 성경은 침묵합니다.
앞으로 이삭의 자손들과 이스마엘의 자손들이 서로 증오하고 싸우고 죽이는 관계임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이시라면 광야에서 죽어가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죽도록 놔두는 것이 두 민족 사이에 있는 분쟁과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죽어가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살려주십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그 언약으로 인해 그를 축복하고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민족인 오늘날의 유대인들, 이스마엘의 자손인 아랍 민족인 오늘날의 무슬림들이 수천년 동안 서로를 향한 미움과 증오는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브라함의 나이 175세에 죽음 죽는데 이삭과 이스마엘이 아버지의 장례를 함께 지내는 장면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창 25:9).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만난 이삭과 이스마엘은 어떤 모습으로 만났고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어떤 사이가 되었는지 성경은 기록하지 않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형제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성경은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쫓겨났던 이스마엘이 큰 민족을 이루고 그 자손들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록하며 하나님의 때에 그의 자손들이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와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게 될 것이고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는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60:6-7)
오늘날의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이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참 하나님 아버지를 만날 수 있고 아버지의 품안으로 돌아올 수 있으며 서로가 용서하고 화해하며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기도동역자님, 마지막 때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을 Messianic Jews라 부릅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 중동 지역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스마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삭의 자손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스마엘의 자손들이 이제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그 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하며 기도하고 기다립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