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대교회가 "예수는 그리스도 구세주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하며 고백하는 "익투스"의 믿음을 이 시대에도 회복되게 하소서!
-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초대교회 성도와 같이 이 마지막 시대에 오직 예수만을 바라보며 신앙의 정조를 지키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 우리와 동역하는 82 유닛의 교회개척자들에게 초대교회 "익투스"의 믿음을 주시고, 그들을 통해 다시한번 그 땅 위에 강력한 복음전파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안녕하세요. 오늘 현장이슈 시간에는 저희 실크웨이브 선교회의 로고와 그 역사적 뿌리를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이와 연결해 마치 초대교회가 세워지는 듯한 오늘날 이슬람권 지역에서 일고 있는 교회 개척 운동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튀르키예는 초대교회의 요람이라 소개하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초대교회는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서도 강력한 신앙 공동체를 유지했습니다.
교회가 형성된 초기에는 정치적인 영향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이 위험했습니다. 이때 사용된 것이 바로 "익투스" 심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물고기 모양의 상징을 통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서로 고백했습니다. 그러니까, 익투스란,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 코드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비밀성은, 복음의 특징과 닮아 있기도 했습니다. 마태복음 13:11에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마 13:11)
또 고린도전서에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고전 4:1)
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익투스 비밀 신앙을 통해 신앙 공동체 내에서 서로를 알아보며,박해를 피해 신앙을 지켜나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익투스"심벌은 초대교회의 순교적 성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익투스"는 단순한 신앙의 상징을 넘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한 순교자들의 영웅적 신앙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기능했습니다. 이와 같은 순교적 의미는 SWM선교회가 무슬림 선교에 있어서 중요시 하고 있는 복음의 성격을 잘 나타내줍니다. SWM 선교회는 미 서부지역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슬람권 선교 단체로, 그 로고는 마차바퀴처럼 보이는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로고의 기원을 추적해 보면, 그 모양이 신약 초대교회 시대의 에베소 지역에서 사용된 "익투스(ΙΧΘΥΣ)"라는 고대 그리스어 심벌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익투스라는 단어는 일차적으로 그리스어로 "물고기"를 의미 하지만, 초대교회에서는 "ΙΧΘΥΣ"의 첫 글자를 나타내는 두문자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 드리자면,
"ΙΧΘΥΣ" (익투스) 는
"Ἰησοῦς Χριστός Θεοῦ Υἱὸς Σωτήρ"라는 구절의 첫 글자들을 따서 만든 단어입니다.
Ιησουζ(예수스=예수),
Χριστοζ(크리스토스=그리스도),
Θεου(테우=하나님의),
Υιοζ(휘오스=아들), Σ
ωτηρ(소테르=구세주)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구세주이시다”라는 고백의 첫 글짜를 모으면, Ιησους (예수스=예수) , Χριστος (크리스토스=그리스도) , εου (테우=하나님의) , Υιος(휘오스= 아들), Σωτηρ (소테르=구원자), 익투스가 됩니다.
그 첫 단어들을 마차 바퀴에 새겨 넣은 의미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은, 로버트 J. 뱅크스(Robert J. Banks)의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Going to Church in the First Century)와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A Day in the Life of an Early Christian: A Personal Record)를 읽어보면, 정말 생생히 그려지고 있습니다. 1세기 크리스천 시리즈를 통해 저자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 제국의 감시와 박해 아래에서 신앙을 실천했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가정 교회에서 모이며 공동체를 이루었고, 공적인 박해를 피하기 위해 종종 비밀리에 예배를 드렸습니다.이런 상황 속에서 익투스와 같은 상징은 서로의 신앙을 암묵적으로 확인하고 격려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은 단순한 종교 활동을 넘어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도전을 의미했습니다.
뱅크스의 또 다른 저서 "1세기 그리스도인의 선교 이야기"(Stepping Out in Mission Under Caesar's Shadow: A Progress Report)에서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복음이 어떻게 확산되었는지도 보여주고 있습니다.복음의 메시지는 개인의 변화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경제적, 사회적 구조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이러한 역사적 맥락은 SWM선교회의 로고에 담긴 초대교회의 정신과 깊이 연결됩니다.
신약 성경의 여러 구절은 당시 성도들이 어떤 고난을 겪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19장에는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아데미 신전을 둘러싼 경제적,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큰 위기에 처한 장면이 나옵니다.
저희 선교회가 2010 에베소 연합기도회를 주님께 올려드렸던 곳이 바로 바로 그 에베소 아고라 광장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자신들의 신앙이 발각될 경우, 모든 경제 활동이 중단되었고, 신체적 구속과 박해과 고문과 살해의 위협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초대교회는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모든 고난을 견디며 인내하며 예수님의 재림 소망가운데 살았습니다.
• 에베소에서의 소란과 박해 (행 19:23-27)
• 바울의 박해 경험 (딤후 3:10-12)
• 바울의 에베소 교회에 대한 경고 (행 20:28-31)
• 에베소 교회의 시험과 박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 (계 2:2-9)
등을 보시면 잘 나와있습니다.
익투스는 단순한 암호를 넘어서, 예수님 안에서의 희망과 구원을 상징하며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게 하는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이슬람권에서 초대교회의 신앙적 여정을 그대로 재현하는듯 살아가는 한 가정이 있습니다. 저희 선교회 홈 페이지에도 소개된 바 있는 체틴 가족을 혹시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체틴 가족은 무슬림 배경에서 예수의 제자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체틴장로는 무슬림이었으나,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가족의 믿음의 기둥으로서 큰 박해와 사회적 고립 속에서도 신앙을 지켰고, 그의 아내와 자녀들 역시 이러한 신앙의 여정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딸 헬린은 19세에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뒤 3년 이상 사역에 헌신하고 있으며, 아들 로샷 역시 18세에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서고 있습니다. 이들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러했듯, 주변 사회의 조롱과 거부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키며 공동체를 섬기고 있습니다.
특히, 체틴 가족은 그들이 겪은 변화와 고난을 통해 예수의 능력을 증언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짜증 많고 무관심한 사람이었으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는 차분하고 사랑이 넘치는 남편과 아버지로 변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그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강력한 복음의 증거가 되었고, 지금도 그들은 튀르키예 내에서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현재 튀르키예의 신앙적인 모습 역시 초대교회의 단면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은 성경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처음 교회를 이루었던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 "전염병," '세상을 소란케 하는 자들,' “이단," 등으로 불리웠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 11:38, 행 24:5).
그런 사람들은 교회가 시작된 직후 약 200년 동안 12명에서 2천 5백만명으로 증가했지요. 그러니까, 자그마치 2백만배가 넘는 증가 수치였습니다. 이런 거대한 부흥은 오늘날에도 처음 교회가 있던 바로 그 무슬림 지역에서 재현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답하기 전에 우리는 한가지 질문을 더 해보게 됩니다. "그 처음 20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크리스천이 세상을 뒤덮었는가?"
교회개척자들중 하나인,
알렌 허쉬 (Alan Hirsch) 박사는 "초대교회 처음 200년간의 상황" 요인들을 다음 6가지로 정리했습니다.
- 교회는 불법적인 종교활동이었다. 최악의 상황은 관련자 모두 함께 고발되어서 잔인하게 고문받고 처형당하는 것이었다.
- 교회 건물로 불릴 만한 공식적 장소가 전혀 없었다. 고고학자들의 발굴도 이를 증명한다. 집집마다 비밀리에 모여서 신앙 모임을 했다.
- 성경책도 없었다. 사도들이 보내주었던 편지를 지역별로 돌려보는 정도였다.
- 어떤 교회 기관이나, 전문적인 리더십이 없었다. 침착하고 자발적인 네트워킹은 있었다.
- 교회의 모습이 오늘날과 달랐다. 청년부 새신자예배 주일학교 신학교 등이 없었다.
-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심지어, 2세기에 접어들면서는 박해와 이단의 심각한 증가때문에 새신자는 자신의 신앙을 증명해야 하는 심각한 입단 기간을 따로 가져야 했었다.
메시아닉 유대 공동체에서 제가 전해 들은 이야기는, 초대 교회에서 성도로 세례를 받기 전에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게 되는데 그 전날 밤에 마을 뒷산 동굴 같은 곳에 모인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교회의 지도자들과 세례를 받기로 결정한 성도들이 모이게 되는데 그들의 신앙고백을 들은 후에 지도자들은 세례 받기 원하는 분들을 그 동굴에 두고 다음 날 아침에 오게 됩니다. 세례받는 분들은 자신이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면 치룰 대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할 기회를 가지면서 자신의 신앙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방식을 따를 것인가를 결정할 하룻 밤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뿐 아니라, 알렌 박사의 위와 같은 신학적 정리를 통해서도 익투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을 전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며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은 자유롭습니다. 맘껏 언제든 예배 드리고, 찬양드리고, 전도도 하고, 기도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만큼의 익투스 신앙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 최초의 200년이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현재 우리의 신앙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익투스 신앙의 증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허상이나 이론이 아닙니다. 그들은 실재입니다. 우리가 현재 기도와 재정과 참여를 통해 돕고 있는 동역자들입니다.
익투스 신앙은, 지금도 튀르키예의 사역자들이 박해를 피해 펼치고 있는 비밀 사역 활동을 통해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N82 같은 코드를 받고 튀르키예에서 입국이 거부되거나 추방당한 선교사의 숫자가 115명이나 됩니다. 여기에는 SWM 선교회 대표이신 김진영 선교사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같은 기간에 코드를 받지는 않았지만 가족 중에 한명이 추방되었기에 함께 튀르키예를 떠난 선교사 가족들의 숫자는 총 250명입니다.
물리적 박해가 없는 상황에서도 익투스 신앙은 우리가 진정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도행전 19장에서 보여준 "믿음의 굳건함"과 같은 내적인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할 때, 그것이 사회적, 문화적 압박 속에서도 타협 없이 순수하고 진실된 신앙으로 살아가려는 의지에서 비롯되어야 함을 배웁니다. "익투스"의 심벌이 가리키는 의미는 단순히 과거의 교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자유롭게 복음을 전파하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도전입니다.
우리는 물리적 위협이 없다면, 신앙을 지키는 것이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점에서 우리가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은 신앙의 자아도취나 타협입니다. 물리적 박해가 없는 이 시대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굳건히 하며, 진리의 복음이 세상의 문화와 가치 속에서 어떻게 왜곡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의 믿음을 굳건히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서로의 고난을 나누고 상호 의지했습니다. 우리도 물리적 박해가 없는 시대에 살지만, 영적인 박해와 도전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제 복음에 대한 반응을 물리적인 박해의 위협이 아닌, 복음을 향한 우리의 충성된 헌신으로 응답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 맞춰, 그리스도 안에서의 고난과 희생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 고민하며,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그를 따르는 여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박해와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익투스 신앙으로 사역하고 있는 우리들의 동역자, 튀르키예의 개척자들을 중보하며 계속 후원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시한번 고린도전서 4장 1절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