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의 놀라운 역사를 위해 이산 목사를 구원하시고 세우시고 인도하신 우리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올려드립니다.
- 이산 목사와 튀르키예의 쿠르투루쉬(구원) 교회와의 아름다운 연합과 동역이 주님의 주권과 인도하심 가운데 계속 되게 하소서
- 성령의 지혜와 계시와 분별의 영을 이산 목사께 늘 부어주사, 튀르키예의 복음화와 교회개척운동을 위해 더욱 귀하게 사용되게 하소서
그동안 함께 기도하고, 협력하며 동역 해온 많은 분들을 한자리에서 뵙게 돼서 크게 기쁩니다.
여러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이미 튀르키예를 방문하셨을 것으로 믿습니다. 튀르키예가 어떤 나라인지 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미 다 잘 알고 계실 줄 믿습니다. 저는 튀르키예를 잘 모르는 분들에게 튀르키예를 소개할 때, 베드로전서 1장1절 말씀을 먼저 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하노라”.
이 말씀에 나오는 모든 지역이 모두 튀르키예입니다. 시리아 안디옥에서부터 시작된 이방 선교의 시작은 거기서부터 전 지역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같이 오신 오르한 목사님도 바로 본도 지역 근처에서 현재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저도 갈라디아 지역에서 왔습니다.
이 말씀을 대함에 있어 제가 여러분과는 조금 다른 감동이 있는 것은 바로 성경의 이 많은 지역이 바로 우리나라 땅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저를 매우 고무시킵니다. 마치 제 이름을 성경에서 보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저를 향한 편지를 읽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대단하고 큰일인지 갈라디아인들을 향한 서신에서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갈라디아서 3장 1절을 보면 ‘어리석은 갈라디아인들 이여’라고 시작하는 것이 조금 당황스럽긴 합니다. 그러나 역시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은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이 은혜를 바로 지금 여기 계신 분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핍박은 이 튀르키예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도 핍박을 받았습니다. 핍박받는 자들을 구별하려는 나쁜 의도로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크리스천’이라 불리면서 ‘그래 맞아, 우리는 크리스천이야, 그리스도인들이야’ 라고 자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메시아, 구세주를 따르는 자들이며 저들의 뒤를 잇는 자들입니다. 저들이 전했던 복음을 우리도 동일하게 전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 지금 온 세상에 퍼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모든 아시아 지역에 복음이 편만하게 전파되고 있습니다. 모든 곳에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들이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들은 모든 이들은 새 생명을 찾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로 갑작스럽게 튀르키예 땅은 기독교인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 땅의 전역에 기독교인들이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삶이란 것은 쉬운 일은 아니죠. 로마 제국은 기독교인들이 점차 많아지고 널리 퍼지게 되자 기독교인들을 잡아 사자밥으로 던져주었습니다. 그럼에도 기독교인들은 오히려 당당히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밝히며 사자밥으로 던져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종교는 복합적인 종교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 사람들과 로마 제국은 기독교인들과 타협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섬기지 말고 제국과 그들의 황제를 주로 섬기는 모양만 갖춰도 봐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에 오직 주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길을 따르기 위해서 그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순교자의 피 때문에 이 지역에 드디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오히려 교회가 널리 퍼져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핍박을 받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오히려 편만하게 전파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핍박받을 기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면 따라갈수록 핍박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튀르키예든 미국이든 한국이든 간에 예수만 따라가면 핍박이 오게 돼 있습니다.
물론 핍박을 받는 것이 그렇게 즐거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핍박 뒤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기쁨과 감사가 있습니다. 감사와 찬양이 있기에 우리가 핍박을 기꺼이 견뎌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교회가 성장했습니다. 4세기가 되면서 로마 땅 전 지역에 교회들이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들의 삶이 편해지면서 그들은 복음 전파를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잊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삶이 편해지자 쓸데없이 본질이 아닌 것에 신경을 쓰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기독교인들의 가장 본질이라고 하는 복음 전파에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국교화가 되고 4세기 이후부터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점점 식어갔습니다. 그 뜨거운 열정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셨던 말씀을 기억합니다. 너희들이 행한 것을 잘 안다. 차지도 덥지도 않구나. 모든 기독교인들은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했어야 했습니다.
기도할 때 복음을 전할 때 그리고 무엇을 하든 간에 기독교인들은 열정, 그 열정이 식으면 안 됩니다. 편해지면 복음 전파는 잊게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가 안에서 싸움하고 또 분쟁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을 짓고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본질적이지 않은 쓸데없는 신학적인 논쟁으로 시간만 끌었습니다. 예를 들면 천사들은 몇 개의 날개가 있는가? 저 아이콘들이 맞는거야 틀린거야?와 같은 것으로 말입니다.
10세기가 돼서 중앙아시아부터 시작된 투르크인들의 행진이 드디어 이 아나톨리아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란을 거치면서 아랍인들과 충돌이 시작됐습니다. 아랍인들과는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전쟁에서 그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책적으로라도 기독교인이 무슬림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랍인들을 만나고 나서 무슬림이 된 튀르키예인들은 이 아나톨리아 지역에 무슬림의 정체성을 가지고 들어오게 됩니다. 무슬림이 된 이 투르크인들은 전 로마 땅을 이슬람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이 아나톨리아 지역에 이미 살고 있었고, 새로운 무슬림 정체성을 가진 이 투르크인들이 아나톨리아 지역으로 합세를 하게 됩니다. 충돌 없이 편안하게 지나가 버립니다. 아무도 복음 전파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고 그들이 널리 퍼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당시에 얼마나 기독교인들이 식었었는지 이 무슬림이 된 투르크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는 전혀 신경을 안 쓰고 오히려 비본질적인 일에만 신경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과학에는 한 법칙이 있습니다., 공간이 있으면 공간은 늘 채워지게끔 돼 있습니다. 기독교인들도 영적으로 빈 공간이 있을 때 다른 어떤 것으로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어둠으로도 채워질 수가 있고 이슬람으로도 그 공간이 채워질 수 있습니다. 사탄도 공간으로 들어갑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빈 공간을 채워야만 합니다.
투르크인들은 이 땅에서 돈과 무기와 다른 어떠한 방법을 가지고 점점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기독교인들의 수는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1800년도가 되면서 이 지역에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의 비율이 거의 50 대 50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800년 만에 전체 기독교인들이 반으로 줄어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 이후 감소 속도는 더 빨리 진행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1930년대에 와서는 0.00% 가 돼버렸습니다.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땅에 살았던 기독교인들이 아무도 새로 들어온 이 무슬림 튀르키예인들에게 복음 전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선교사들이 전 세계로 퍼져 지구촌을 복음화했습니다. 유럽에서 선교사들이 아시아로도 가고 또 미국의 선교사들이 한국으로도 갔는데 마치 튀르키예는 살짝 지나쳐 버린 것 같습니다. 튀르키예 앞에 와서는 뛰어넘어 다른 나라로 가버렸습니다. 튀르키예 땅으로 새로운 선교사들이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들어온 선교사들조차도 투르크인들을 향해서가 아니라 그 땅에 살아남았던 소수의 기독교인들을 향해서만 복음 전파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미 그런 일들이 금지였습니다. ‘이 투르크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면, 우리를 죽일거야’라는 두려움으로 꽉 쌓여 있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영은 이미 사라져 버렸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땅의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은 우리를 사자밥으로 던지라고까지 스스로 얘기한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이 땅에 남아있는 소수의 후손들인 기독교인들의 상황을 보십시오. 이렇게 변질돼 버렸습니다. 튀르키예인들은 사자들보다 더 위험한 존재입니다. 이제 튀르키예 땅은 점점 더 흑암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지금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명한 책에, 튀르키예를 가리켜서 세상에서 가장 복음이 전파가 안 된 종족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전혀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미전도 종족 중에 미전도 종족이 바로 이 튀르키예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튀르키예의 많은 사람들이 흑암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외롭고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1960년대까지 아무도 이 튀르키예 땅을 생각하는 선교사들이 없었습니다.
1960년 이후부터 드디어 젊은 선교사들이 이 땅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드디어 튀르키예인들 중에서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한두 명의 기독교인들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60년대 이후부터 80년대 후반까지 드디어 튀르키예 전역에 약간이지만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1985년에 처음으로 현지인에 의한 현지 교회가 세워집니다. 너무하지 않습니까!
1985년 첫 교회가 세워졌던 해에 제가 대학생이었습니다. 저도 젊은이였지만, 많은 젊은이들이 들어야 될 복음을 듣지 못하고 그렇게 기회를 잃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982년에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처럼 저도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보수 무슬림은 아니셨습니다. 어머니는 가끔씩 중요한 날이 있으면 기도 정도는 하셨지만 강력한 무슬림 가정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님과는 조금 다르셔서 라마단 기간이 되면 술을 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름뿐인 무슬림이지만 아버지는 라마단 금식 때 유일하게 술을 안 드셨습니다. 아버지가 기도하는 것을 저는 생애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저희 가정은 참 불행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우리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었던 저는 일터의 사장님에게 기도를 배우고 그를 따라 하루에 5번씩 기도했습니다. 전 너무 외로웠고, 불행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열심히 기도했지만 수년이 흘러도 여전히 불행하기만 했습니다. 끊임없이 기도했지만 전혀 응답이 없었습니다. 마치 벽을 향해 기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알라로부터는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면 신은 없는 거야, 이제 더 이상 기도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저는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공산당에 가입하고 반정부 활동을 하다 수차례 구금되고 고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회주의의 당원이 돼서 튀르키예를 살리려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감옥에 갇혀 나 자신도 구하지 못하는 저는 하루하루를 고통으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석방이 된 후에는 복학해 학교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이스탄불을 떠나 내 뜻대로 살겠다며 앙카라로 이사했습니다. 극심한 고문으로 인해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몸을 이끌고 말입니다.
앙카라에서 어느 날 버스를 탔는데 갑자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버스 안은 굉장히 복잡했고 저는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갑자기 복잡한 버스 안에서 큰 빛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구름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내가 하나님이니라 나는 처음부터 존재하던 자이니라”라고 말입니다.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이 말씀 하시는 분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고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 두려운 마음에 안 하던 기도를 다시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슬람식 기도였습니다. 지금까지 이슬람 무슬림으로서 그렇게 많은 기도를 했는데 아무 응답이 없었는데 지금 이 소리가 응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이슬람의 기도의 응답이 아니라 또 다른 신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거겠지 생각하며 꾸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읽어봐도 이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버스 안에서 보았던 빛에 대한 생각이 끊임없이 제 머리를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뉴에이지든 뭐든 모든 강연과 세미나를 참석해서 빛이 뭔지를 알아내려고 스스로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앙카라에 책 전시회가 있어서 우연히 지나가다가 보았는데 거기에 성경이라고 하는 이름의 책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주고 성경을 구입을 했습니다. 유대인에 관계된 구절들을 제가 넘기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창세기부터 레위기까지 읽었습니다.
거기서 딱 멈춰버렸습니다. 사실 저는 생전 처음으로 읽은 책일 뿐더러, 안에 복음서가 뒤쪽에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구약을 읽었는데 유대인의 책으로만 알고 있었고, 구약을 읽으면서 아무것도 저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신약을 한 번 읽어보라는 소리를 듣고 이번에는 신약 성경만 있는 인질이라는 책을 따로 구입을 또 했습니다.
사실은 구약 뒤쪽으로 있었는데, 거기는 없는 줄 알고 새로운 신약 성경만 구입하러 간 것입니다. 읽어보니깐 구약과는 좀 달랐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예수가 참 좋은 분이구나 거기까지만 제가 이해를 했습니다. 그렇게 덮어놓고 몇 달이 지났는데 갑자기 제 마음속에 그 책을 더 읽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예전과는 달리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제 마음속에 이상한 뜨거운 것이 꿈틀거렸습니다. 차례대로 읽는데 로마서에 오면서 제 생각이 드디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씀은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지금까지 흑암에 어떤 괴로움과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기간에 조차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그 시간 동안 내가 저질렀던 모든 잘못과 죄와 하나님을 대항하는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나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머릿속에 많은 질문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처음 성경을 읽었을 때 많은 질문들이 생기듯이 저도 질문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좀 찾아가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목사님을 만나서 내가 좀 배워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앙카라에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대화할 상대조차 없었습니다. 어떤 선교사도 앙카라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튀르키예를 향해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는 당시에 튀르키예에 없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선교사조차 없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드디어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의 앞부분을 보니까, 바이블 소사이어티에 주소가 있었습니다. 편지를 써서 저의 궁금함을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정성스러운 답변을 보면서부터 스스로 그럼 나는 기독교인이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후에 돌이켜 보니 제가 흑암의 권세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도 누군가가 우리 튀르키예를 그리고 저를 위해서 기도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가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뒤로 제가 8년 동안 아무도 기독교인이라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앙카라에서 혼자였습니다. 스스로가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을 만들었지만 아무도 기독교인이 없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90년도가 돼서야 처음으로 교회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함께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제 여자친구도 뒤에 1년 뒤에 기독교인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혼했습니다. 두 딸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너무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예전 같지 않게 이제 하나님께서 저와 또 우리 가정과 우리의 이 사역을 위해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튀르키예에 수많은 무슬림 청년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도 저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보게 되면 변할 것입니다.
그 뒤로 저는 아주 활발한 복음 전파자가 됐습니다. 가방에 신약성경을 가득 채워가지고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공원에 가서 아무에게나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즐겁게 복음을 전하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1996년도에 처음으로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저를 목회자로 안수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로서 설교하는 첫 시간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이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이었습니다. 그 뒤에 제 삶은 튀르키예 전체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저의 모든 삶이 되었습니다.
전혀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이 튀르키예 땅에 우리가 복음을 스스로 전하기를 지금 원하고 계십니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튀르키예의 수많은 지역에 바로 우리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당시에 저희 교회는 35명이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어떤 선포를 했냐면 ‘더 많은 교회를 세울 것입니다.’ 35명 전부 놀라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습니다.‘이게 가능한 일이야 35명밖에 없는데?’ 그리고 2년 만에 새로운 교회를 하나 더 세웠습니다. 우리 지교회를 세웠습니다. 물론 2년 동안 잘못도 있었고, 실수도 있었고,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
제자를 만들기 위해서 학교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앙카라의 기독교 라디오 방송국도 하나 세웠습니다. 예전에 사람들이 무엇이라 했습니까? ‘불가능해 너 뭐 하는 거야. 그게 가능한 일이야?’ 심지어는 튀르키예 군대가 저를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그때에 저희들은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원하면은 우리를 사자밥으로 던져!’ 하지는 않았지만, 성령 충만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의 앙카라 복음방송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거리거리마다 복음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터미널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복음 전단지와 함께 조그마한 봉지에 선물로 땅콩이나 콩들을 이렇게 나눠주는 일을 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노숙자도 있고 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저희 교회는 그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며 너희들 뭐 하느냐고 물어보면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갑자기 터미널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한 그룹을 보게 됐습니다. 누군가 물어봤더니, 바로 시리아에서 ISIS로부터 피난 나온 시리아 난민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튀르키예인들 곁에 시리아 난민들이 드디어 주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지금 성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듯 올 2월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지진 지역에는 저희가 세웠던 지교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그 지역의 어려운 재해민들을 향해서 복음전도와 함께 사랑을 베풀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오늘 이 자리에서 이 지진 지역의 피해자들을 위해서 이 자리에 계신 많은 분들이 기도와 사랑으로 함께 하신 것을 기억하며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SWM이 처음부터 이 일에 함께해 주셔서 다시 한번 심심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어떻게 우리들의 교회들이 여러분의 동역으로 이루어진 교회들이 얼마나 많이 번져가고 커져갔는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1996년도에 처음으로 앙카라의 첫 교회가 있었습니다. 1998년도에 저희들의 교회가 남쪽으로 지교회들이 생겼습니다. 2005년도에 남쪽으로 세 개의 교회들이 세 지역에 생깁니다. 현재는 튀르키예인이 세운 교회와 아랍인이 세운 교회들이 튀르키예 내에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35명의 성도들과 시작했던 저희 교회가 지금 2023년도에 수많은 지역의 지교회들로 지금 성장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희 지교회들 중에는 이방인 교회도 있습니다. 일곱 개의 아랍인 교회, 두 개의 이란 교회, 그리고 러시아 교회도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 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러시아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교회를 이 땅에서 지금 세워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사도행전 17장 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이곳에 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복음으로 천하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튀르키예를 뒤집어 버리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완전히 바꾸고 싶습니다. 어둠을 치우고 싶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이 일을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하고 싶습니다.
최근의 교회 성장 속도는 예년의 속도보다 훨씬 빠릅니다. 그러한 이유 중의 하나가 아마도 바로 SWM과 같이 일해서인 것으로 저는 확신합니다. 제가 똑똑해서 이 일이 이루어진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아무도 튀르키예 인에게 복음을 전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복음을 전해 들어보지 못한 민족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왔던 땅입니다. 아직도 튀르키예는 복음을 전해야 될 수많은 지역과 땅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튀르키예 지도상의 모든 지역을 복음으로 칠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아직 튀르키예를 전체를 곳곳을 다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교회들이 여전히 작습니다. 너무 많은 할 일들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복음을 전해 듣지 못한 튀르키예’라는 그런 얘기를 이제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나라를 지금 이 튀르키예 땅을 바꾸기 원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와 함께 기도하시는 순간부터 튀르키예는 더 빨리 변화가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열린문 장로교회의 성도들이 튀르키예 전체 성도들 보다 훨씬 많습니다. 이 교회에서 튀르키예를 위해서 한번 크게 기도회를 하고 더 큰 집회를 한다면, 아마도 튀르키예의 변화는 더 빨리 될 것으로 믿습니다. 수년 전에 한국을 간 적이 있습니다. 한 교회를 방문을 했었습니다 큰 교회였습니다. 한곳을 가리키며 이곳이 무슨 자리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설명해 주시길 성가대 자리라고 했습니다. 그 자리가 우리 교회보다도 컸습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한다면, 그리고 우리도 함께 여러분들과 같이 기도한다면, 튀르키예는 변할 것이며, 튀르키예로 더 많은 분들이 오시면 오실수록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사용하셔서 그리고 우리를 사용하셔서 튀르키예를 더 변화해 나가실 것입니다.
교회는 성장하게 돼 있습니다. 오르한 목사님과 저도 같은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복음 전도입니다. 함께 연합해서 한 네트워크로 일하는 그런 결과를 통해서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접근하지 못하는 곳이 이제는 없게 하시고, 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게 하실 주님을 기대하고 찬양합니다.
내년에 저는 앙카라를 떠나려 합니다. 31년 동안 목회자로 앙카라에서 살았습니다. 새로운 목회자가 올 것입니다. 이제 주님이 다른 지역으로 저를 보내시는 것을 느낍니다. 조금 더 뜨거운 곳으로 갈까 합니다. 이즈미르라는 튀르키예의 에게해 지역의 도시로 가려고 생각 중에 있습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이즈미르에 새로운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비전을 주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주님이 저를 통해 그곳에서 또 새롭게 일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SWM 덕분에 많은 일들이 가능했음을 다시 한번 이 자리에서 고백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그동안의 모든 사역과 사역지에 SWM의 흔적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많은 필요를 채워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함께 튀르키예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절대로 다른 곳에 가지 마시고 함께 일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