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k Wave Mission 칼럼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한 이란인의 간증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한 이란인의 간증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한 이란인의 간증
콤에 있는 파테마 마수메 성지. 콤은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150km 떨어져 있는 종교 도시이다.
이란에서는 무슬림이 기독교인으로 개종하면 투옥되거나 죽임을 당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많은 무슬림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있다. (현재 이란은 기본적으로 이란인 모두를 무슬림으로 간주한다). 월드워치모니터는 유럽에 살고 있는 27세의 이란인 "개종자"와 인터뷰 하며 그가 기독교인이 되기까지 겪었던 어려움들과 이란을 떠나야 했던 이유를 듣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무슬림이었지만 종교적으로 엄격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선생님이었고 아버지는 교사 직 외에도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언제나 분주하였었죠. 일평생 이슬람을 따랐던 분이지만 돈 문제에 관해서는 언제나 이슬람보다 우선이었습니다.
아버지처럼 나도 돈을 사랑했습니다. 돈이 있어야 친구도 생기고 존경도 받고 재미있게 지낼 수 있으니까요. 저는 성장하면서도 언제나 재미있게 살고 싶었습니다. 매일 밤 친구들과 도시의 이곳 저곳을 다니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선한 무슬림이 되고 싶어 선한 행실도 많이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기적으로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려고 애를 썼지만 기도 시간을 까먹거나 기도 중에 잠들어 버리거나 아니면 그 시간을 친구들과 노는 데 쓰곤 했습니다. 무슬림으로서 나는 너무나 부족하고 형편없다는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형편없이 부족한 모습이니 천국에는 결국 못 들어갈 거야. 그러니 무슨 소용이 있어?
내가 뜬금없이 기독교에 관심을 보이자, 나를 걱정스럽게 생각하던 친구가 나를 종교지도자에게 보냈습니다. 그는 기독교 개종자를 다시 이슬람 종교로 귀화 시키는 전문가였습니다.
어느날 나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자신을 보고 놀라게 되었습니다 '가서 기독교에 관해서 알아봐야겠어' 저는 이런 내 자신에게 놀랐습니다. 내가 기독교에 관해 알고 싶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기독교인이라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듣기로는 기독교는 아주 구식 종교이고 신자들은 다 이상한 사람들이라던데 그리고 그 무엇보다 기독교를 믿는 일은 이란에서는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즐기며 인생을 살 수 있는데 무슨 이유로 감옥에 가거나 죽게 되는 일을 선택하겠습니까?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기독교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어요. 어느날 결심했지요. '그래 일단 해보는거야. 이상하다고들 말하는 기독교인들을 좀 찾아 가서 이야기를 나눠보자.' 그래서 같은 시에 있지만 멀리 떨어진 교회를 버스 타고 찾아갔습니다. 교회를 찾았을 때 그곳에 있는 한 짐꾼에게 뭐 좀 물어봐도 되겠나갸 말했어요. 그는 퉁명스럽게 '안돼요' 말했어요. 저는 버스로 돌아오면서 생각했습니다. ‘그래. 내가 들은 소문이 정말 맞구나. 기독교인들은 정말로 이상한 사람들이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이란 정부가 교회에서 무슬림들에게 기독교에 관한 어떠한 질문에도 답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교회들도 방문해 보았지만 어디서나 동일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거의 포기하고 있던 어느날 밤, 강렬한 생각이 밀려왔어요.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 생각은 내 마음에서 계속 일하고 있었습니다. '가서 기독교에 관해 알아보자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자.' 강렬한 감정 때문에 내 머리는 무척 혼란스러웠습니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밤새 한잠도 못자고 어떻게 하면 기독교인들의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을까 궁리했습니다.
이란은 이슬람의 절대적 영향하에 있다. 이란의 종교지도자들이 강력하게 버티고 있는 한, 이란인이 된다는 것은 곧 무슬림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때 친구 한 명이 떠올랐어요. 그 친구는 불법 “지하” 조직의 활동을 전담 수사하는 경찰이었습니다. 지하 교회와 불법 전도활동을 포함한 모든 지하 조직의 활동들을 감시하고 추적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물어보는 것이 저로서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나를 기독교인들과 연결시켜주는 일은 친구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일이었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했습니다. 친구가 의심하지 못하도록 농담처럼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내 계획이 먹혀 들어갔습니다. 친구는 별다른 의심없이 나에게 무슬림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주소를 알려주었습니다.나는 너무 기뻤습니다. 그 친구가 기독교인들은 일요일에 예배한다고 해서 다음 일요일이 되자 마자 친구가 준 주소로 찾아갔습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자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나는 기독교에 관해서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예배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한 남자가 나왔습니다. '저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손목 시계를 보더니 '죄송합니다만, 지금은 바쁘니 다음 주에 다시 와서 나를 찾으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정중히 내 질문을 거절하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어떡하든 다시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일주일 후에 다시 교회로 가 문밖에서 그 남자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를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몹시 불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저는 일전에 나더러 다시 오라고 한 그 남자를 찾고 있다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지금 여기 안 계십니다.'
막 돌아서 나가려할 때 그가 정말 위험한 제안을 했습니다. '함께 들어가서 예배 드리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란의 무슬림들에게 기독교인들과 예배 드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이 내게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리고서 저는 심호흡을 깊게 하고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부모님들은 제가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것을 달가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일로 저를 괴롭히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이란을 떠나고자 마음 먹은 것은 저를 제자 삼아 훈련한 믿음의 공동체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정부에 발각되는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아마 그들은 저를 믿음의 공동체의 뿌리를 찾아내려 할 것이고 결국 믿음의 공동체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분은 내게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나는 크고 작은 많은 모스크 내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오래된 모스크 뿐 아니라 현대식 모스크에도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러나, 교회당 안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은 전에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교회당 내부의 외양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TV에서 교회들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혀 생소함이나 부담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너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제가 그곳에서 평화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마치 내가 수족관 안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의 어깨를 누르는 듯한 무게감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앉아 완전히 압도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일어서고 앉을 때 나도 그대로 따라했습니다. 설교는 들었지만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을 만큼 나는 강한 느낌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예배 후에 커피와 차를 마시며 교제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습니다. “처음 오신 분 같은데, 맞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하나님에 대해 물어보아도 되냐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어렵습니다. 언제 시간 되시면 저희 집에 오십시오'
그래서 그의 집에 방문했습니다. 저는 많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답은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마음에 흡족한 답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천국이 어떤 곳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천국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임재가 있는 곳', '우리의 영혼이 창조주와 함께 거하며 온전한 평안을 누리는 곳’ 이라고 했습니다.
이란의 현재와 이전의 최고 지도자들의 사진, 사이예드 알리 호세이니 카메네이(왼쪽)와 사이이드 루홀라 뷔사비 코메이니(오른쪽), 이들의 사진은 이란 도처에 걸려 있다.
이슬람은 천국을 이 땅에서 누리지 못한 온갖 것들을 누릴 수 있는 곳으로 가르칩니다. 많은 다양한 여자들과 술로 만족이 있는 곳이라면서 말입니다. 저는 한번도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이 형제가 이야기하는 천국이 정말 잘 이해가 되고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분이 아니라 이 땅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그 중심에 두신 분이시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신의 영이신 성령님을 부어주셨습니다.
저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이슬람의 알라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알라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사소한 작은 일에도 분노하고 계시는 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은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창조하셨고 또한 나의 연약함을 통하여 그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며 그를 닮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아주 작은 일로 내게 징벌하시는 알라에 비하면 이 사실은 너무나 큰 차이였습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맞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나를 인격적으로 아시는 분이십니다.
여전히 저는 과거 무슬림 신앙의 영향하에 강하게 붙들려 있었습니다. 내면에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돌보시는 분이시라면 길을 보여주십시오'
재미있는 것은 제가 기독교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 친구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기독교를 핍박하는 입장의 무슬림 리더였습니다. 그는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을 다시 이슬람으로 개종시키는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당시 뜬금없이 기독교에 관심을 갖자 저를 걱정한 친구가 이슬람 종교 지도자를 소개했던 것입니다. 그는 제게 이슬람에 관해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동안에도 저는 성경의 말씀이 분명한 진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꿈이나 순간적인 계시 같은 특별한 순간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크리스쳔이 되어 갔습니다. 진리를 가리고 있던 커튼이 걷혀진 것 같았습니다. 나타난 하나님의 진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저는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저는 이제 기독교인입니다!' 가족들은 조금씩 알기 시작했습니다. 내 삶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예수" DVD를 가져와 동생과 함께 보았습니다. 가족들은 동생과 내가 마약을 하고 결국 경찰에 붙들려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기독교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들은 제가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것을 달가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일로 저를 괴롭히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이란을 떠나고자 마음 먹은 것은 저를 제자 삼아 훈련한 믿음의 공동체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정부에 발각되는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아마 그들은 저를 믿음의 공동체의 뿌리를 찾아내려 할 것이고 결국 믿음의 공동체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18세에 집을 나왔습니다. 이제 27세가 되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이란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10년이 넘도록 가족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게는 너무나 큰 희생이었습니다. 물론 제 마음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지만 지금의 제가 저는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기도제목:
- 성령님의 역사가 더욱더 강력하게 부어져서 많은 무슬림들이 주께 돌아올 수 있도록 하소서.
-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러한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더욱더 많은 무슬림들이 주께 돌아올 수 있도록 하소서.
- 기독교로 개종한 무슬림들과 그들이 속한 믿음의 공동체가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안전을 도우소서.
https://www.worldwatchmonitor.org/2016/08/4584943/?utm_source=Newsletter&utm_medium=email&utm_content=Convert+explains+journey+to+Christianity%2C+and+why+he+left+Iran&utm_campaign=Convert+explains+journey+to+Christianity%2C+and+why+he+left+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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