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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k Wave Mission 칼럼



터키 기독교 역사의 산 증인- Roger Henry Malstead 선교사 간증

터키 기독교 역사의 산 증인- Roger Henry Malstead 선교사 간증


터키 기독교 역사의 산 증인

 

Roger Henry Malstead 선교사 간증

 

 

Roger Henry Malstead 선교사님은 1960년대부터 터키와 터키 주변 국가에서 사역한 터키 기독교 역사의 산 증인이다.
1961
년에 그는 그가 다니고 있던 시카고 휘튼 대학의 친구 Dale Rhoton, Operation Mobilization(이하: OM)의 창시자인
George Verwer
와 함께 전도 여행으로 터키를 처음 방문했다. 1963년 대학 졸업이후, 1964년에 OM에서 파송을 받아
터키 이스탄불에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1965년에 터키에서 추방되었다.

그 이후, 1981년부터 터키에 들어가기를 시도하여 1986년에 다시 터키로 들어갔지만 이듬해에 또다시 추방당하게 된다.
여러차례 터키에서 추방되었지만 그는 독일, 영국, 레바논 등의 주변 국가에서 터키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터키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다. 현재 70이 된 나이에도 여전히 그의 부인과 함께 터키를 오고가며
가르치는 사역과 복음전도 사역을 하고 있다.

 

1960년대 당시 터키에서 경험했던 Roger 선교사님의 간증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우리 팀은 터키에서 성경통신과정을 시작하고 그것을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로 계획했다.
우리에게 큰 도전은 어떻게 사람들의 이목을 우리에게 집중시키지 않으면서 눈에 띄지 않게 홍보를 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봉투 5000개씩을 세 번에 걸쳐 나누어 사기로 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살 때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세 번째 봉투를 살 때, 유대인 가게 주인은 로저, 당신은 너무 많은 봉투를 사는군요라고 말했다.
나는 당신은 내가 얼마나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는지 모를 거에요라고 대답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가게주인이 훗날
우리에게 벌어졌던 그 일과 관련이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알파벳 순으로 되어 있는 전화기록부에서 약 15,000명의 주소를 얻어서 발송준비를 했다.
특히 사업체와 같은 것은 피하고, 주로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집중했다. 그 당시 그리스 교회에 나갔던 Tanas의 딸은 함께
자원봉사자로 섬기며 이 일을 도울 젊은 사람들을 알아봐주었다.

 

이것은 몇 주에 걸처 이루어졌다. 봉투에 주소를 쓰고, 터키어로 번역된 성경통신과정에 대한 초청의 글을 넣었는데
이것은 Dale Rhoton이 써주었다. 그것을 누가 인쇄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지역 프린트 업체였다.
우리는 15,000개의 거대한 봉투를 잔뜩 넣어가지고 발송할 준비를 완료했다. 이것은 쿠르반 바이람으로 알려진
절기동안 하기로 했다.

 

쿠르반 바이람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희생제물로 바친 것을 기념하는 축제의 날이다. 무슬림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바친 자식이 이삭이 아닌 이스마엘이었다고 믿는다. 매년 이 기간 전에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집 옆이나 길가에서 동물을 잡는다. 지금은 정부가 이것을 위해 일정한 지역을 할당해 두었다.
사람들 중에는 이 일을 잘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전문가들이 도와주기도 한다. 그 다음에는 축제를 벌인다.
무슬림들은 쿠르반 바이람에 그들이 잡은 동물의 일부를 가난한 사람들이나 이웃들에게 나누어 준다.
사실, 가끔은 우리도 그러한 선물을 받았다. 

 

그 행사가 있기 며칠 전에 많은 사람들은 안부 카드를 보낸다.
그랬기에 우리가 우체국에서 적당량의 봉투를 보낸다면 눈에 띄지 않을 것을 알았다.
우리는 가능한한 많은 우리의 그리스도인 친구들에게 이 일을 돕도록 요청했다.
일반 사람들이 그들의 카드를 부치기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우리의 것을 부치기 시작했다.
그 일을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만에 했다. 나도 500개의 봉투를 들고 가서 잽싸게 그것을 쏟아붓고 우체국을 떠나왔다.
다른 팀원들은 각기 다른 우체국에 갔다.

 

나는 오후에 그곳에 다시 갔고, 다른 팀원들도 그렇게 했다. 우체국 직원이 같은 종류의 우편물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압수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확인이 필요했다. 우리는 기도했다. “주님, 우편물 중에서 단 하나의 응답 편지라도 오게 해주세요
어떤 종류의 편지를 받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보낸 봉투에는 응답 편지를 받기 위해 내가 이스탄불 우체국 중 하나인 Eminunu에서 빌린 우편함의 주소를 프린트해 두었다.
우리는 단지 성경통신 과정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편지를 쓰라고 요청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그것은 상업적인 사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료였다. 우리는 많은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다. 특별히 다음과 같은 반응은 더더욱 아니었다.

 

3일 후 이스탄불의 큰 신문사 중 하나인, Hurriyet 은 “기독교 선전물이 이스탄불을 강타하다” 라는 표제로 1면을 장식했다.
기사는 기독교인들이 많은 양의 주소와 함께 초대장을 인쇄했고 이에 참여한 한 젊은 미국인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한 젊은 미국인? 그 사실을 누가 알았을까? 그 정보를 알아서 제공한 사람은 그 유대인 문방구 주인임에 틀림없었다.

 

우리는 이 상황에 대해 엎드려서 더욱 뜨겁게 기도하게 되었다. 이틀 동안 우리는 열심히 기도했다.
셋째날이 되자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여전히 우리가 한 것이 그렇게 심각한 것이었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우리가 경찰서에 가서 설명을 한다면 그들은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했다.

 

나는 비닐봉투를 가지고 우체국에 갔다. 나는 내가 빌렸던 우편함을 열었고, 거기에는 수없이 많은 응답 편지들이 있었다.
그것을 비닐봉투에 담기 시작했다.

 

우리와 함께 가시지요.” 뒤에서 한 목소리가 위압적으로 들려왔다.

 

나는 대답했다. “제 편지를 모두 넣고 나서요

 

경찰서에서 나는 프랑스인처럼 보이고, 소르본 대학에서 공부한 수사관에게 조사를 받았다.
그는 매우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묻기 시작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지요?”

 

우리는 무료 성경통신과정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왜 이것을 하고 있나요?”

 

우리는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전해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누가 당신을 보냈지요?”

 

우리 지역교회가 나를 보냈습니다

 

누가 당신을 후원하나요?”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고 믿는 지역교회와 친구들이 우리를 후원합니다

 

나는 내가 속해있는 OM(Operation Mobilization)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어떤 기관이든 이 일에 연관되지 않기를 원했다. 그래서 단지 지역교회만을 이야기했다.
그들이 일리노이아 주에 있는 나의 지역교회를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OM을 비롯해 어떤 국제적인 선교기관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루종일 나를 심문했다. 그들은 한, 두개의 편지를 열어보았고, 다음날 다시 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우체국의 우편함을 빌리면서 맡겼었던 나의 여권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들은 편지를 모두 압수했고,
그것들을 돌려주지 않았다.

 

내가 다음날 다시 갔을 때, 조사관은 나에게 말했다.

 

로저, 당신은 이러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반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신 나라의 헌법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헌법 복사본을 한장 가지고 다녔다.

 

헌법에는 언어로, 그림으로 혹은 어떤 방법으로든 종교를 표현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로저, 여기는 터키에요!” 그는 나의 의견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신 나라의 헌법이에요

 

우리는 계속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는 한, 두 차례 다른 기관에 대해 말하도록 강요했다.

 

나는 계속해서 발뺌을 했는데, 이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조사관은 나를 흉내내며 이렇게 말했다.

 

로저, 당신 그것 알아요? 당신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때마다 당신의 손가락을 이렇게 하는군요

 

그는 꽤 조사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결국 그는 다시는 그것을 하지 마시오라고 말했고, 나는 풀려날 수 있었다.

 

그가 1960년대에 처음으로 시작했던 성경통신 과정은 그 당시 아무도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당시 터키에는 단지 2명의 성도만이 존재할 정도로 영적으로 척박한 시기였다
.
그러나 선교사님과 팀원들의 복음증거를 위한 거룩한 열정과 담대함, 희생이 터키 땅에 씨앗으로 뿌려졌다
.
그리고 현재 열매를 맺고 있다. 지난 세월동안 약 십만 여명의 터키인들이 성경통신과정과 연결되어 신약성경과
기독교 서적들을 무상으로 받아보고 있다. 몇 해 전, 한 전국적인 설문조사에 의하면 모든 터키 성도의 50% 이상이
이 과정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보고 되었다. 여러차례 경찰의 심문을 받고, 추방을 당하면서까지도 터키에서
복음증거를 하셨던 선교사님의 간증은 우리로 하여금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라”(시편 126:5)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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