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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김진영선교사)

비록 없을지라도

swm 2011.11.23 04:04 조회 수 : 24

비록 없을지라도




 

  

매거진 금향로 2011년 11월호



오늘날 우리는 여러 세대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낙심과 실망, 좌절과 불만,
분노의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뉴욕의 Wall Street의 금융회사들을 향한 분노, 부를
소유한 1%의 사람들을 향한 분노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자신이 행복해질 권리를 빼앗긴 젊은이들과 서민들의 불평과 분노가 부를 가진 자들을
향하여, 권력을 가진 자들을 향하여 쏟아지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 사회를 향한, 회사와 직장 상사를 향한, 부모와 배우자를 향한 일종의
불만과 분노를 갖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현재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이 삶에서 불평과 원망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과연 감사할 수 있을까요?
어린 나이에 불치의 병으로 죽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가 
감사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삶을 다 바쳐 가족을 위해 희생한 남편이나 아내가 암으로 죽어갈 때 감사할
수 있을까요?  수십 통의 이력서를 가지고 다니지만 취직을 하지 못한 젊은이가 사회
에 대해 감사할 수 있을까요?



여기 한 선지자 하박국의 고백을 듣습니다. 그는 BC 6세기 때 유다 왕국이 바벨론
제국에 의해 침략을 당하고 결국 나라가 멸망하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국가와 사회는 폐허가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하고 모든 재산이 약탈당하는
그러한 현실을 바라보는 하박국 선지자는 여호와를 향하여 2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왜 악인을 벌하지 않으십니까?”


           유다 왕국을 멸하기 위해 왜 악한 바벨론을 사용하십니까?”


또한 하박국 선지자는 불의하고 비도덕적인 세력들이 나라와 백성을 통치하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고민하면서 어디에 공의가 있습니까? 왜 불공평합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삶의 고통 속에서 울부짖으며 무화과 나무에, 포도나무에, 올리브
나무에 열매가 없습니다. 밭에 먹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습니다. 모든 삶이 황폐해진 상태에서 저주받은 인생이 되었습니다.
전에 누렸던 풍요로운 삶에 비교하면 현재의 절망감은 더욱 견디기 어렵습니다
라고 호소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그렇게 불공평하고 궁핍하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그는 어떻게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었을까요?


      “비록,,,없을지라,,,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 3:18)

근대 터키에서 선교를 시작한 지 50여 년이 흘렀습니다.  
터키 인구 7500만 명 가운데 기독교인의 인구는 약 4,100여명 (0.005%)도 되지 않은 

복음화가 가장 안된 국가 중의 하나가 바로 터키입니다



비록 종교의 자유가 있고 사역자들이 1700여명이 되고 지난 세월 동안 수많은 선교전략과 방법들을 사용하였지만 그리 만족한 만한 열매가 없는 것으로 인해 많은 사역자들이 
낙심하며 절망가운데 선교지를 떠나는 이들이 많습니다.



복음의 진보가 늦고 힘든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현실에 대해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감사할 수 있을까요?


시편 136 23-26절에 보면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서도 기억해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는 어둠과 사망 가운데 있는 수많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바라보면서 실망과
좌절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감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만군의 주 여호와가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과 그 분의 인자하심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의 인자는 히브리어로 헤세드라고 하는데 은총, 선행, 친절, 인자, 인애, 자비,
사랑
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비록 우리가 실망과 좌절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인자, 자비, 은총,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변하지만 우리를 향한 그의 인자와 사랑은 충만하며
영원하다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그의 인자와 사랑은 본문에서 3가지 내용으로 나타나있습니다.


첫째: 여호와는 우리를 기억하고 계신다.

터키와 이슬람권에서 사역하고 있는 사역자들의 어려움은 사역의 힘든 부분도 있지만 
이슬람권에서 구체적인 사역의 열매가 없는 것으로 인해 후원교회와 후원자들의
무관심, 연약한 중보기도의 지원, 실제적 사역 지원 등이 없음으로 인해 실망하고
좌절하는 사역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이 사역을 계속해야하는가에 대한 회의가 들때마다 항상 잊지 않을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역자들을 기억하고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반드시 기억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또 한 현재 이렇다할 만한 풍성한 열매가 없다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슬란권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동역자들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9:15) 



여호와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과 세운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의 백성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따라서 온 열방과 모든 민족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그의 언약을
기억할 때에 이스마엘 자손들이 주님께로 돌아올 그 날을 기다리며 소망 가운데
중보기도하는 사역자들과 성도님들을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계시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이유가 됩니다. (이사야 60:6-9)



둘째: 여호와의 헤세드는 우리를 대적으로부터 건져주신다.

어둠과 사망 가운데에서 죄의 노예로 있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대적 사탄으로부터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시고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분의 능력으로 대적으로부터 우리를 날마다 구원해주고 계십니다. 
우리 사역자들은 사역지에서 끊임없는 영적인 도전을 받습니다.  또한 중보기도자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안고 이슬람권의 영혼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것을 사탄과 악한 

영들은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기도하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시험과 도전으로

방해하고 있습니다. 가정과 사역을 향한 악한 대적으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시는 그분의

헤세드는 능력이 있으며 영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셋째: 여호와의 헤세드는 날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


그의 인자하심은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자체가 경이롭고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온전한 감사의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베푸시는 그의 은혜는 실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수많은 감사의 조건과 제목들이 가득합니다



나아가 우리를 여호와의 동역자로 부르시고 사명을 감당하도록 능력을 주시고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며 살도록 하시는 그분의 은혜는 실로 감당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천사도 흠모하는 복음을 증거하는 삶으로 부르시고 아버지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영혼들을 섬길 수 있는 사역들을 주시고 그들을 위해 중보하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를 채워주시는 그의 은혜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 사역자들과 중보기도자들을 향한 그의 뜻은 항상 낙심하라 쉬지말고
원망하라 범사에 불평하라는 것이지만 우리를 향하신 여호와의 뜻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렵고 힘든 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삶의 고통과 고난 중에서 힘들어 
하는 동역자들이 많습니다. 비록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의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이 

없을지라도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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