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8-08-22 22:53
ㆍ조회: 113967  

우리 아이, 무슬림이자 유대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 아이, 무슬림이자 유대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글: 엘리자베스 베커 토프카라(8/2/2018)
번역: 김지영


들어가는 글 

지난 8월 2일자 워싱턴 포스트 지에 실린 흥미 있는 기사를 나누며 미국 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라나고 있는 다음 세대에게 일어나는 일을 함께 들여다 보기 원합니다. 유대인 엄마와 무슬림 아빠가 결혼하여 그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하며 우리의 자녀들은 어떤 가정을 꿈꾸고 있는지 이 기사를 읽으면서 고민하고 기도하기를 부탁드립니다. (SWM  편집부) 


결혼식 날, 글쓴이와 남편(사진 제공 : 엘리자베스 베커 토프카라 )


모든 결혼이 다 그렇겠지만,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의 결혼은 섬세한 균형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부부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에 대해 바꿀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만,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한가지가 있다. 바로 ‘아이들’ 문제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혈통을 이어 나가며, 영생에 대한 꿈을 이루어준다. 우리 일생의 가장 큰 의무가 아이를 잘 양육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이와 관련하여 어떤 부분은 양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여러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일이 그 한가지 예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양보하기 힘든 일들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 집의 경우는 아들의 머리를 언제 깎아야 할지, 실내에서 신발을 신게 할 것인지 아니면 밖에다 벗어 놓게 할 것인지 같은 문제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나서 나에게 던져진 가장 어려운 질문은 다름 아닌 이것이다: 우리 아이가 무슬림이면서 동시에 유대인으로 살아갈 수는 없을까?

결혼식 전날 친정엄마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낳은 아이는 유대인이 될거야”. 유대 법에 따르면 유대인 엄마에게서 낳은 아이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물려 받는다. 반면, 이슬람은 거의 확실히 부계주의를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무슬림 남자가 유대인이나 기독교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무슬림 여자가 다른 종교의 남자와 결혼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남편과 내가 서로 사귀기로 결정하기까지 고려해야 일들이 참 많았다. 6년이 걸렸으니 말이다. 정식으로  사귀기 전 6년간 우리의 대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만약에’였다. 내가 “당신은 만약에 우리가 딸을 낳으면 그 아이가 히잡을 쓰기를 원해요?”라고 물으면 우푸크는  “우리 자식이 만약에 신에 대해 질문한다면, 당신은 뭐라 답할거예요?” 라고 되물었다. 우리가 함께할 미래는 가 본 사람이 별로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우리는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지 모를 상황들을 사전에 헤아려 보고자 애썼다. 물론 전례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무함마드 선지자에게는 ‘순전하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유대인 부인 사피야가 있었다) 안내서 역시 없었다.

우리가 결혼을 하고 아들 ‘싸미’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의 종교적 정체성에 대한 우리 부부와 가족들의 기대가 최대 관심사로 부상했다. 시어머니는 코란 구절을 암송하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보내주셨다. 말을 안 해도 싸미에 대해 어떤 기대와 소망을 갖고 계신지 알 수 있었다. 

남편과 나는 싸미를 “평화의 아기”라고 부르며 그 아이의 어깨에 꽤 무거운 짐을 지웠다. 싸미가 종교적 분열은 극복될 수 있다는 증거가 되길 원했기 때문이다. 이런 막중한 사명을 띄고 태어난 싸미는 지금까지 모든 통과의례에서 우리를 하나되게 하고, 우리 사랑의 상징으로서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

싸미가 4세가 된 지금, 우리의 일상 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금요일에는 우푸크가 기도를 하기 위해 싸미를 모스크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싸미는 아빠를 따라 머리를 땅에 대고 기도를 한다. 또, 어떤 금요일에는 나와 함께 계피 찰라를 굽기도 한다.

두가지 종교 전통이 공존하는 우리 가정의 모습에 가족과 지인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낀다. 그들은 도대체 싸미가 무슬림인지 유대인인지 확실히 알고 싶어한다. 그들은 우리가 결혼을 통해 귀중한 것을 하나씩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귀중한 것 하나씩을 얻었다고 믿었다. 나의 결혼 소식을 들은 유대인 이웃 하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 공동체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이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가 있나요?  장차 태어날 당신의 아이들에게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란 걸 모르나요?”

내 대답은 이것이다 : 이슬람과 유대교 두가지 전통 속에서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아들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4살밖에 안 되었지만 싸미에게 ‘다름’이란 극복해야 하는 그 무엇 이상이다. 그 아이는 일상의 삶 속에서 ‘다름’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것을 누리고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다. 그리고 정작 더 큰 선물은 부모인 우리가 받았다. 싸미의 부모로 살면서 우리 부부는 각자의 종교와 문화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 두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부분을 발견하며 배울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함께 축하하고 누리며 기뻐했다. 성서의 이야기부터 금식, 풍부한 음식 문화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서로의 세계에 대해 깊은 공감을 경험했다.

간혹 도덕적인 판단의 기로에 서 있을 때, 나는 “무함마드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가끔은 나와 말싸움을 벌일 때 남편이 구약 성서의 구절을 인용하는 경우도 있다.

싸미가 나이가 더 들면, 우리의 종교가 다르게 가르치는 부분에 대해 설명해줘야 할 때가 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도 우리는 ‘다름’보다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것에 포커스를 맞출 것이다.

나는 ‘유대인으로 산다는 것은 많은 질문들을 던지는 것’이라고 어려서부터 배워왔다. 싸미도 이제 ‘왜?’라고 묻기 시작하는 호기심 가득한 나이가 되었다. 다음번 유월절 행사에서 싸미는 유대교 전통에 따라 4가지 질문을 하는 예식을 치르게 될 것이다. 작년 유월절에는 독실한 무슬림인 내 시동생이 이 예식을 치뤘다. 우리는 시동생이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있다는 부자연스러움을 느낄까봐 마음을 졸였다. 하지만, 우리가 바랬던대로  그는 오히려 그 자리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같은 조상에게서 나와 같은 이야기, 같은 도덕율, 같은 소망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도 내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우리 가족에게 있어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건 바로, ‘싸미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인가?’ 이다.

우리는 우리를 가족 구성원으로 하나되게 묶어줄  이야기들을 들려주기로 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온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 외딴 섬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가족들을 통해,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듣고 배웠기에 피부처럼 익숙해진 관습을 통해 그 세계에 매여 있음도 느낀다. 그러나, 싸미의 입장에서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배우고 경험한 가족은 유대인도 무슬림도 아닌 그 사이에 자리한 유대인-무슬림 가족이다.
두 종교적 배경이 공존한다는 건 약간의 혼란과 많은 명절을 의미한다. 싸미는 내가 가르쳐준 하누카 기도의 첫 구절을 완벽한 히브리어 발음으로 암송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다중언어 환경에서 자랐기에 가능한 일이다. “바루크 아타 – 생일 축하합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성냥을 들고 조심스레 초 하나 하나에 불을 붙이며 싸미가 외친다. “누구 생일이지? 엄마 생일? 싸미 생일?”

“아니요! 무함마드의 생일이예요!” 즐거운 목소리로 싸미가 답한다. 일주일 전에 촛불 없는 커다란 고급 초콜릿 라즈베리 케익으로 칸딜(무함마드의 탄생)을 기념했었는데, 이번엔 초에 불을 붙이며 그의 생일을 축하한다.

언젠가 싸미가 두 종교 문화의 차이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할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싸미가 받아들이기에 결코 쉽지만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싸미가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들을 던질 때 우린 정직하게 대답할 것이다. 마음먹은 건 꼭 해내고 마는 성격을 가진 싸미가 성인이 되었을 때, 그리고 자신의 가정을 이루었을 때 이 두 전통을 어떻게 삶에 통합하고 녹여낼 것인지 방법을 잘 찾아낼 것이라 믿는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왜냐하면, 싸미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 아빠에게 너무나 사랑받고 또 그를 사랑하는 유대인 엄마로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싸미 자신을 포함해 우리 부부가 함께 나누어 가진 모든 것이라는 걸.

< 기도제목 >
  • 우리 자녀들이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게 하시고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믿음의 가정을 이루도록
  • 싸미와 같이 복음의 영향력 밖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복음이 능력있게 전파되도록

Source: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acts-of-faith/wp/2018/08/02/can-our-child-be-both-a-muslim-and-a-jew/?noredirect=on&tid=&utm_term=.4c3a8a2497a6






  0
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