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0-07-0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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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시리아 성도들을 위한 기도 : 터키에 있는 앗시리아 기독교인들, 그들의 미래를 두려워하다


터키의 앗시리아 성도들을 위한 기도


  • 터키의 앗시리아 기독교인들과 공동체를 향한 터키 정부의 정치적인 압박과 그외 모든 압박이 곧바로 멈추게 하소서!
  • 터키의 앗시리아 기독교인들과 공동체가 그들의 지역에서 그들의 전통을 지키면서 계속 살수 있도록 터키 정부가 협조하게 하소서!
  • 터키와 중동의 앗시리아 교회와 그외 모든 전통 교회들과 정교회들 위에 하나님의 새로운 부흥이 임하게 하소서!




터키에 있는 앗시리아 기독교인들, 그들의 미래를 두려워하다.



글:  레지에 아코크 (AFP, 06/04/ 2020)
 

<시리아크라고도 알려진 앗시리아 기독교인들은 동양의 기독교 전통의 일부이며,
예수가 사용했던 언어로 추정되는 아람어로 기도한다. (AFP Photo/BULENT KILIC)>
 

<20세기에 폭력과 빈곤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지역을 떠난 후 현재 터키 남동부에는 약 4,000명의 앗시리아인들이 남아 있다.
(AFP Photo/BULENT KILIC)>
 

<최근 약간의 인구수 증가에도 불구하고, 지역 지도자들은 터키 지역사회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AFP Photo/BULENT KILIC)>


굴고제 (터키) (AFP) - 6세기 터키 남동부의 교회 안에는 수십 명의 앗시리아 기독교 여성과 남성, 그리고 일요일마다 예배에 가장 많이 참여하는 어린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고대 고국에서 열린 몇 안 되는 모임 중 하나이다.

20세기에 폭력과 빈곤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지역을 떠난 후 현재 터키 남동부에는 약 4,000명의 앗시리아인들이 남아 있다.
그들은 현재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으며 독일에 10만 명, 스웨덴에 약 10만 명, 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에도 수만 명이 살고 있다.
앗시리아 기독교인들은 시리아크라고 알려진 동양 기독교 전통의 일부이며 예수가 사용했던 언어로 추정되는 아람어로 기도한다.

40세의 유하눈 아카이는 수 세기의 역사를 지닌 마르딘의 굴고제 마을 투르 압딘에 살고 있다. 투르 압딘은 시리아어로 하나님의 종의 산이라는 뜻이다.
시리아어로 "장미의 눈"이라는 뜻의 아인 와르도라고 알려진 이 마을은 한때 수백 명의 앗시리아 가족들이 농사를 짓고 기도하고 아이들을 교육했던 곳이었다.
이제 농부이자 여덟 살 자녀의 아버지인 아카이를 포함한 세 가족만이 남아 있다.

"과거에는 200명의 시리아인 기독교 가정과 7명의 성직자가 마을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세 개의 교회를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각각의 이웃들은 교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라고 그가 AFP에 말했다.

"매주 일요일마다 세 교회에서 예배가 있었고 그들은 풍족했습니다."
투르 압딘에는 2,500개의 교회와 300개의 수도원이 있다고 시리아 연합회의 대표인 에브길 터커는 말했다.

터커를 포함한 터키 지역사회 지도자들은 최근 약간의 인구 증가에도 불구하고 터키의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이스탄불에는 약 20,000명의 앗시리아인들이 있다.

다른 지역 사회와 마찬가지로, 터키는 앗시리아인들이 레젭 타입 에르도안 대통령 정부 하에서 동일한 경제 문제와 "정치적 압력"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해외로 이주한 앗시리아인들을 터키로 돌려보내자는 시도가 있었고, 압류된 재산은 소유주에게 돌아갔다.

많은 앗시리아 디아스포라들은 옛 마을들이 예전의 영광을 되찾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름에만 이곳에 왔다가 유럽에 있는 그들의 집으로 되돌아간다고 아카이는 말했다.

이 마을에 새롭게 지어진 그들의 집은 텅 비어 있는 상태이다.

이곳에 있는 세 개의 교회는 수 세기 동안 견뎠지만, 2001년 이후, 지역사회를 섬기는 성직자는 없었다고 아카이는 전했다.
이러한 우려는 단지 종교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아카이는 고대 시리아어를 배우기 위해 특별한 학교를 다녔던 경험을 나눴다. 그 학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고대 시리아 언어가 어려워 더이상  아이들에게 그 언어를 가르치거나 교육할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그는 한탄하며 말했다.

그는 아내 소니아와 함께 자녀에게 그들의 뿌리와 언어를 가르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성직자가 필요할 때, 미디앗 마을 근처에 있는 이와 접촉하고 있다.

앗시리아인들은 1915년에 자신들이 속한 지역사회가 학살당한 것을  비슷한 시기에 아르메이아인에게 일어난 대학살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카이는 그 학살의 시기에 몇몇의 사람들이 현재 그의 가족이 기도하고 있는 교회로 숨어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 후, 터키에 있는 앗시리아인들의 수가 꾸준히 감소했고, 특히 1980년대와 1990년대 쿠르드 반군과 남동부의 주 사이에서 일어난 폭력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해외와 이스탄불로 이주해야 했다.

어떤 이들은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떠났다.
올해 1월, 이라크 국경 지역에서 가까운 쉬르낙이라는 곳에서 칼딘 카톡릭 소수자에 속한 한 커플이 실종된 후, 앗시리아인들이 타켓이 되면서 두려움이 야기되었다.  3월, 71세인 후르무즈 디릴은 실종 상태이고 그의 아내인 65세 시모이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시리아 정교회 세페르 빌레센 신부가 테러 혐의로 체포되어 우려를 낳았지만, 투르커는 앗시리아인들이 타켓이 되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마르딘의 옛 도시에 있는 교회는 6세기의 교회를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곳에서 가족들이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상이 있는 그곳에 둘러싸인 채, 성직자의 말을 듣고 있다.

은퇴한 교사 데니즈 키릴마즈를 포함한 참석자들은 1990년대 이후, 기도할 수 있는 자유가 크게 더해졌다고 하며 삶이 얼마나 향상되고 개선되었는지에 대해 묘사 해주었다.

“여기서 사는 것은 우리 교회와 수도원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조상들이 이곳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데니스 키릴마즈는 덧붙었다.

투르커는 터키로 돌아온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공동체를 섬겨야 할 책임을 느꼈다고 설명하면서  “이곳이 바로 나의 나라입니다”라고 말했다.
앗시리아인들은 터키에 있는 그들의 유산에 대해 여전히 걱정하고 있다. “언어가 서서히 없어지기 시작하는 것 같아 그것이 속상합니다. 이처럼 종교, 인종, 사람들이 사라져가는 것이 정말 마음이 아프고 슬픕니다.”라고 아카이는 말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힘으로 끝까지 버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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