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 Member   I   Contact  I    English
ㆍ조회: 2895  
지치지 않는 하나님의 열정  (신 4:32-40)
 
상하이 스캔들이 일어났다.
한국 최고의 엘리트 5명이 ‘덩’씨 중국 여자 한 사람에게 놀아나더니 바보가 되었다. 서로 투서하고 질투하는 이상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삼류 소설이나 막장 드라마에도 이런 이야기를 찾기 힘들 정도다. 막장 드라마 쓰는 작가도 책상을 치며 감탄할만한 이야기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한 영사는 자기가 변심하면 수억을 물어주고, 손가락을 자르겠다는 각서까지 썼다고 한다.

비록 그릇된 이야기고 다시는 이런 수치스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랑에 눈이 멀어서 미쳐버린 사람들 이야기다. 잘못된 사랑이든 아니든, 사랑은 이성의 판단을 마비시킨다. 건강하지 못한 사랑이라면 이성을 무시하는 엉뚱한 에너지가 나온다. 건강한 사랑이라면 이성을 뛰어넘는 에너지가 나온다. 사랑의 에너지가 대단한 것만큼은 틀림없다.

뉴질랜드에서 일어난 지진 속에서 그런 이야기가 있다. 건물이 무너지는 가운데 한 어머니가 자기 아이와 같이 깔렸는데, 아이를 덮고 깔리면서, 아이는 나중에 살고, 그 어머니는 죽게 되었다. 이성은 자기의 안전을 말하고 있지만, 사랑의 힘은 자식을 살리고 자신을 희생하는 에너지를 발휘하게 한다. 사랑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도 하고, 사랑은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가?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사랑의 이야기보다 더 극적이고 더 열정적이고 더 아름답고 더 고통스런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셨다. 그 열정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영원하다. 동시에 어떤 고통이나 고난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배반하는 우리와 여전히 함께 하시는 열정적인 사랑이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선택받을 가치가 없는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열정적인 사랑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다. ‘사랑, 선택, 그리고 실행’이라는 삼 단계를 거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나누었다. 오늘은 그 중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나누고자 한다. 우리의 배반이나 배신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형의 사랑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마음이 변하는 우리 곁에
간절히 계시길 원하신다.

구약과 신약의 몇몇 증거들은 배신자들과 함께 거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한다.

1. 첫 번째는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십자가다.
우리는 율법하면 부정적인 생각부터 하지만, 율법의 원래 목적은 부정적인 것에 있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선언문이다. 하나님의 진지한 마음의 표시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나누어갖는 결혼서약식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가족이 갖는 가족 선언문이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소망과 비전이 나온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스케줄이 나온다. 이 세상 어느 민족도 가져본 적이 없는 계약서와 그에 딸린 자세한 설명서를 받았다.


율법과 그 율법의 핵심인 십계명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다. 이렇게 전적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다(신4:24). 어렸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질투하신다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님도 유치하시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님께서 어찌 어리석은 우리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계시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사랑을 해보니까 알겠다. 사랑의 대상을 남에게 빼앗겼을 때, 격렬한 질투의 마음이 일어난다.
사랑의 증표로 율법과 십계명을 주시고, 동시에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일러주셨다. 사랑의 다른 표시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만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배반하였다. 이스라엘의 배반은 모든 인류의 배반이나 다름없다.

율법으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이 돌아오지 않자, 살아계신 말씀이신 예수님을 보내셨다. 어떤 율법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요, 사랑의 증표로 보내주셨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였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렇게 거부하고 배반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클라이맥스다.
십자가는 십계명의 완성이다. 빼앗긴 하나님의 사랑을 되찾아 오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사랑을 증명해보이셨다. 예수님의 사랑이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다.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온 우주에 대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처참하게 자기를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온 우주에 선포하고 계신다. “십자가는 온 우주에 고함치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외침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분명한 사랑의 증거물이다.
 
2. 두 번째는 성막과 임마누엘이다.
구약에 나오는 성막은 죄인 중에 머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다. 죄인과 같이 있고 싶으셨다. 그들과 같이 대화하고 만나고 싶으셔서 만드신 장소다. 그래서 meeting place, 회막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다.


간단히 그 안을 살펴보라. 성소 앞에 있는 제단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 교제하기 전에 가장 필요한 것이다. 또한 감사나 헌신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성소로 들어가면, 지성소 앞에 향단이 있다. 향단은 기도를 상징한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기쁘게 받으신다는 뜻이다. 그 오른쪽으로 등대가 있다. 빛이신 하나님께서 빛을 주신다는 뜻이다. 그 왼쪽에는 진설병이 있다. 생명 되신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신다는 뜻이 있다. 그리고 지성소 안에 들어가면, 속죄소가 있다. 모든 용서의 총집결체는 바로 지성소에 있는 속죄소에 있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의 표시다. 죄 많은 백성 중에서 계속 계시려면,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계실 수가 없었다.

예수님은 자신을 스스로 성전이라고 말씀하셨다. 살아계신 성전이다. 죄인인 우리와 만나기를 원하신다. 죄인인 우리와 만나기 위해서, 먼저 우리 죄를 용서해주셔야 만날 수 있다.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용서하셨다.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간절한 열정을 경험할 수 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것보다, 예수님이 나를 더 만나고 싶으시다.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이 달리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 있고 싶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와의 사랑에 미쳐계시다. 심지어는 짝사랑까지 하신다. 내가 알아주지 않으니까! 내가 예수님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니까! 이랬다저랬다 하는 나를 여전히 받아주시지 않는가? 나라면 벌써 오래 전에 내쳤을 것인데…….
 

3. 세 번째는 제사제도와 예수님의 희생이다.
제사를 보자.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세하게 자신을 만날 기회를 주고 계신지. 내가 너를 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너희도 나를 전심으로 사랑해보아라! 그래서 번제를 주셨다. 전체를 헌신해보라는 뜻이다. 소제를 주셨다. 너희 생명이 내 것이라는 뜻이다. 노동하고 먹고 마시는 모든 활동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인정하고 만나면 얼마나 좋겠니? 라는 메시지다. 화목제는 하나님과 직접적인 사랑의 교제를 의미한다. 속죄제와 속건제를 통해서, 용서받는 길을 제공하셨다. 용서해주시고 만나주시고 축복해주시고자 하는 모든 길을 제사제도 안에 마련해주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마음은 가져오지 않고, 제물만 가져왔다. 만남을 사랑하기보다, 의식적인 종교생활이 되었다. 심지어 제사제도가 우상이 되었다. 하나님은 없고 제사제도만 남았다.

예수님은 이 땅에 제사장으로 오셨다. 동시에 제물이 되기 위해서 오셨다. 제사장이면서 제물이 얼마나 이상한가? 그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주님은 배반하고 떠난 우리를 위해서 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 대변하셨고, 기도하셨다. 동시에 스스로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라는 제단에서 자신의 몸을 드리셨다. 영원히 드리신 제사다. 단 한 번이면 족한 제사다. 그 효력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배반과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신다고 하는 하나님의 고백의 현장이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산다.

이렇게 시대를 거쳐서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한다. 감사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표현하지도 않는다. 감사하다고 말하면 어디 덧나나! 가장 아름다운 기도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가 아닌가!

유진 오닐이라는 극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금이 간 채로 태어나, 수선하며 살아간다. 신의 은총이 그 접착제다.” 맞다. 우리는 금이 간 채로 태어난다. 몸에도 금이 가 있다. 영혼에도 금이 가 있다. 정신에도 금이 가 있다. 수선하지 않으면, 더 깊은 금이 가서 망가질 수 있다. 그 금이 간 우리가 도움을 받지 못하면 죽는다.
하나님의 은총이 있어야, 수선될 수 있다. 내 영혼은 십자가에서 이미 수선 받았다. 이제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수선 받아야 한다. 한가지씩, 한가지씩...

내 몸에 대하여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좋은 소식부터 말하자. 2007년도에 처음 발견할 때, 4.8 센티였던 사이즈가 2.7센티로 줄어들었다. 나쁜 소식은 조그마해진 종양 주위 옆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그만 종양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주에 다섯 번째 간색전술을 받을 것이다. 이 좋은 계절에 색전술을 받게 되어서 짜증스럽다. 지난번에도 9월말 제일 좋은 날씨에 받았는데, 이제 봄이 되어서 운동하기 좋은 날, 이렇게 색전술을 받다니. 운동하기 좋은 이 계절에 한 달 동안이나 테니스를 치지 못한다는 것이 짜증스럽다. 우리는 내가 골라서 치료받을 수 있는 시간을 선택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색전술을 받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내 몸에 수선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감사하다. 주님의 은혜가 수선 받은 자국마다 흘러내리기를 소원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축복해주시기를 원하시는가?

우리가 축복받을만해서 축복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열정적인 사랑 때문에 축복을 받고 있다. 배부르고 등 따시면, 하나님을 잊는다. 물질의 풍요 때문에 잊는다. 바빠서 하나님을 잊는다. 세상 일 때문에 하나님을 잊는다. 자식 키운다고 하나님을 잊는다.
이제 다시 기억하자. 세포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열정적인 사랑을 기억하도록 만들자.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충만해지길 원하신다.



 

  0
3500
윗글 선교의 능력 -김한요 목사 (세리토스 장로교회)
아래글 하나님께서 알려주고 싶은 연합중보기도운동 -스티븐 호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