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2-07-0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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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한 새 사람


금향로 편집부 2022.04.27

2022년 봄 호의 기획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한 새 사람”이다. 금향로의 기획 주제는 안경이라고 이해하시면 좋겠다. 관점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가 꼭 가져야 할 관점인데 갖지 못한 부분을 함께 조명하면서 성경적 이해의 깊이와 균형을 잡으려고 한다. 이런 관점은 개인의 삶과 가정에서 그리고 지역교회 공동체에서도 나타나지만 이것이 현장 선교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2021년 가을호 주제인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와 2021년 겨울호 주제인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예수 공동체”는 우리가 바라보는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생각하고 우리 개인과 공동체의 삶과 사역에 적용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2장 15절에 언급한 “…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라는 말씀대로 제사장 나라로 부르심을 받은 유대인과 구원 대상인 열방의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으로 지어져 화평하게 하는 데에 그 중요한 목적이 있다. 열방의 복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선택한 이스라엘 민족이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것을 유대인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온 인류를 단번에 영원히 구원할 희생제물이 되셔서 구원을 이루시고 유대인과 이방인 즉 죄로 하나님과 원수 되고 서로가 원수 되어버린 유대인과 이방인을 화평케 하셨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다. 이 일을 위해 예수께서 한 새 사람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고전 15:20 에서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말하고 있다.

마 23:13 에 보면 예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저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일을 율법 (복음)을 먼저 받은 유대인들이 행한 것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율법이 무엇이고 할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존 스토트는 그의 에베소서 강해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비극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소명을 망각하고 자기의 특권을 편애로 곡해하여 결국은 이교도를 개나 되는 양 경멸하고 증오하게 되어버렸다는 데에 있다. 다음과 같은 윌리엄 바클레이의 기록을 통하는 우리는 이 두 공동체들 간의 소외와 그들 사이에 깊이 뿌리 박힌 적대감을, 특히 유대인 편에서 엿볼 수 있다.

유대인은 이방인을 매우 경멸하였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지옥불의 연료로 삼기 위하여 창조하셨다고 말하였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신 모든 민족들 가운데 오직 이스라엘만 사랑하신다고 말하였다… 심지어는 이방인 산모가 산고로 고통받을 때 그녀를 도와주는 것도 율법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만 다른 이방인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이방인들은 유대인에게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들 사이의 장벽은 절대적이었다. 만일 유대인 청년이 아방인 처녀와 결혼하거나 또는 유대인 처녀가 이방인 청년과 결혼하면 그 유대인 청년 또는 처녀의 장례식이 치뤄졌다. 이방인과의 그러한 교제는 죽음과 같은 것이었다” (The Letters to the Galatian and Ephesians in the Daily Study Bible by William Barclay, The Saint Andrew Press, 1954, 2nd edition, 1958 p.125)

이른바 ‘중간의 나누는 담’ (14절) 또는 ‘나누는 적의의 벽’은 이방인들이 겪어야 했던 이중적 소외, 즉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부터의 소외를 나타내주는 말이었다. 그 담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대 헤롯이 예루살렘에 세운 장엄한 성전이다. 주목할 만한 성전 건물은 높은 지대에 세워졌다. 이 성전 둘레에는 제사장들의 뜰이 있었다. 이 뜰 동편에 이스라엘의 뜰이, 그리고 그보다 동쪽 더 가서 여인들의 뜰이 있었다. 이 세 뜰 – 제사장들, 그리고 이스라엘의 남녀 신도를 위한 – 은 모두 성전과 동일한 높이에 있었다. 열 네 계단을 더 내려가면 다른 벽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 너머가 이방인들의 바깥뜰이었다. 이것은 성전과 그 안뜰 바로 오른쪽에 있는 넓은 뜰이었다. 이방인들은 이 뜰의 어느 쪽에서도 성전을 쳐다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성전에 접근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은 둘러싸인 벽 때문에 성전에서부터 차단되었다. 높이가 1.5m가량으로 돌로 쌓은 장벽이었는데, 곳곳에 헬라어와 라틴어의 경고문이 게제되어 있었다. 그 경고문의 내용은 ‘이 벽을 넘는 자는 기소당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 벽을 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에베소서 2장의 역사적, 사회적, 종교적 배경이다. 모든 인간들이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지만 이방인들은 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도 소외되었다. 그리고 이 이중적인 소외보다 더 나쁜 것 (성전의 담은 소외의 상징이었다)은 이 소외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야기되는 실질적인 ‘적개심’ 또는 ‘적대감’, 즉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적개심과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적개심이었다.

에베소서 2장의 주요한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 가지 적개심을 모두 없애주셨다는 것이다. 비록 그 순서는 역으로 되어 있지만 이 두 가지가 모두 본장의 후반부에서 언급된다. 14절 ‘그는 ….둘로 하나를 만드사 분리시키는 적대감의 담을 허시고’

16절 ‘그는 … 우리 모두를 십자가를 통하여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두 가지 적개심을 파괴하심으로써 예수께서는 소외가 물러가고 화해가 이룩되며 적개심이 물러가고 평화가 깃드는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는 데 성공하셨다. 새로운 사회란 다름아닌 새로운 인간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이 새로운 인간의 화합은 이미 바울이 엡 1:10 에서 내다보고 있는 바 머리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 통일의 보증이며 전조이다. 엡 2:15을 잘 이해하기 위해 존 스토트의 책을 인용하면서 우리 한국인에게는 조금 생소한 유대인들의 이방인에 대한 태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사도 바울은 엡 2:13 에서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 (이방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리고 엡 2:17 에서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 (이방인)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 (유대인)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라고 말하며 헤롯의 예루살렘 성전에 나타난 이미지를 영적으로 해석해 주고 있다.

터키와 중동 그리고 이슬람권을 우리에게 주신 땅으로 부르심을 가진 SWM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으로 지어져 화평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선포하고 그 화평을 경험하기 원한다. 유대인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무슬림들을 향한 이해만큼 중요하다.

이번 호에 “한 새 사람”을 주제로 가능한 많은 의견을 듣기 원했지만 유대인 사역을 하는분들 외에는 한 새 사람에 대해 잘 말하려고 하지 않아서 이번 호에는 두 가지 중요한 글만 싣게 되었다.

첫 번째 글은 리컨넥팅 미니스트리의 그랜트 베리의 글이다. 이번에 그랜트 베리의 “이스라엘의 회복: 한 새 사람”이라는 글을 실으며 한 새 사람에 대한 이해를 도우려고 한다. 2017년 독일 헤른후트에서 세계 교회개척 및 선교단체 대표들의 모임이 있었다. SWM 리더들도 초청받아 참석했다. 이 헤른후트는 모라비안들이 모여 살았고 후에 모라비안 선교회의 중심지가 된 곳이다. 지금도 모라비안 후예들이 이곳에 모여 살고 있고 그들의 교회와 공동체가 있다. 헤른후트는 전 동독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었기에 많은 성도들이 가 볼 수 없던 곳이며 오히려 체코 국경에서 가깝다. 이 모임의 마지막 시간에 그랜트 형제가 나와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악의 담을 헐어버린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을 허시고 한 새사람을 만드신 것을 열방의 예수 공동체가 기억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도전하며 그의 첫 책 “The ROMANS 911 project”를 소개했다. 이제 6년이 지나 한 새 사람을 열방 교회에 소개하는 로마서 9장, 10장, 11장에 나타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 공부할 수 있도록 스터디 가이드를 만들고 웹세미나를 통해 그 내용을 가르치고 알리는 일 그리고 기도운동에 전력하고 있다.

두 번째 글은 2021년 가을호에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부르심” 이라는 글을 기고해 주신 최에스라 선교사께서 “그리스도 안의 한 새 사람” 이라는 제목으로 귀한 글을 써 주셨다. 십자가에 의해 폐해진 담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 한 새 사람의 참된 의미, 한 새 사람 안의 유대인은 누구인가, 한 새 사람 안에서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상호관계, 마지막으로 최에스라 선교사는 다음같이 글을 맺는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셨듯이 “네 형제 이스라엘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교회에게 묻지 않으실까?” “네가 진정 형제 사랑의 계명을 지켰느냐?”라고 묻지 않으실까? 그럴 때 과연 교회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한 새 사람 안에 지어져 가는 수많은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흰 옷 입고 한 새 사람으로 지어져 가는 성도들과 공동체 중에 SWM 선교회가 부르심을 받은 투르크 민족과 이들이 주로 살고 있는 투르크 창에 대해 알아본다. 20년 전에 루이스 부시 목사가 제창한 북위 35/45창에 대한 AD 2000 & Beyond의 보고서를 나누면서 20년 전의 투르크 창과 그 당시 투르크 창에 복음이 들어갈 때의 상황과 지금 중동의 난민 상황과의 차이는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 지 함께 생각하려 한다.

봄호에는 세 개의 중요한 칼럼이 실려 있다.

SWM 선교회 국제/미국 대표를 맡고 있는 김진영 선교사는 “함께 지어져 가는 역사”라는 제목으로 “예수 안에서의 원리”, “함께의 원리” 그리고 “선한 일을 위하여의 원리”로 우리를 부르신 그분 안에서 한 새 사람으로 지어져가는 예수 공동체의 사명을 일깨운다.

SWM 선교회 미국 이사장을 맡고 있는 손경일 목사는 “우분투”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나눈다.

SWM 파트너 칼럼은 터키의 김밀알/김글로리아 사역자가 “강력한 생명의 빛, 예수 그리스도: 아프가니스탄 선교의 현 상황과 방향성”이라는 제목으로 이란에서 8년, 터키에서 8년 사역을 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아프간 영혼들을 위한 긍휼의 마음을 가진 사역자의 귀한 마음을 나눈다. 2021년 8월 15일 미군 철수로 인해 탈레반에게 탈환 당한 아프가니스탄인들 중 그리스도인 성도들은 약 3,000명 정도이다. 이들이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의 사람들로 구성된 서로의 믿음을 지지하고 뒷받침해주는 강력한 연대 공동체인 한 새 사람 공동체라고 전하고 있다.

봄호의 큰 부분은 2021년 10월~11월에 진행된 터키, 쿠르디스탄, 그리스, 조지아의 교회개척리서치 트립 (이하 CPRT) 보고서 및 간증으로 꾸며진 특집이다. 특히 터키의 교회개척자 네 명의 간증은 그 깊이와 무게가 남다르다. 터키인들은 외부에 자신의 속마음을 깊이 노출시키는 것을 매우 조심하기 때문에 이번에 금향로를 통해 나누는 간증은 귀하고 감사하다. 이 네명의 간증자들은 4차 터키 CPRT 팀들이 만난 분들이다. 터키 동부 아나돌루 권역의 불모지인 카르스에 교회를 개척한 누레틴 형제는 정치인으로 살아왔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난 이후에 찾아온 알 수 없는 수많은 고난을 통해 핍박당하고 감옥에도 갇히게 된 여정을 통해 하나님과 복음을 알아간 삶을 진솔하게 나누어 준다.

같은 카르스에서 동역하고 있는 아르메니안 사역자 다비트는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구원과 원수의 나라인 터키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나누며 주님의 영광을 높이고 있다. 터키 남동부 아나돌루 권역의 수루치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많은 난민들을 섬기고 있는 에크렘 형제는 카르스의 누레틴 형제와 비슷하게 우르파의 군수보좌관으로 정치활동을 했었다. 그는 말라티아 순교사건의 순교자 네자티 형제가 말라티아 지르베출판사에서 보내준 성경을 받고 그 후에 전화로 그에게 많은 신앙의 도움을 받던 중 2007년 4월 네자티 형제의 죽음을 보면서 예수의 길이 얼마나 거룩한 길인지를 깨닫고 자신의 삶을 예수께 드리며 제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 자신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소당하고 감옥에도 갇히게 된 삶을 나눈다. 누레틴은 자녀가 네명이며 에크렘도 네명이지만 하나님께서 다섯째를 주셔서 아이의 출생을 기다리는 행복한 아빠이기도 하다.

흑해지역 오르두의 이란인 교회개척자 베흐루즈는 이란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로 대상을 받은 애니메이션 영화감독이며 제작자이기도 하다. 믿음 때문에 터키에 난민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성경의 이야기와 예수 공동체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글에서 그가 만든 영상들도 소개하고 있다.

2021 CPRT에 참가한 여러 참가자들의 간증과 짧은 보고서도 나눈다.

POWI 는 Pray on-sight with insight 의 약자이다. 현장을 가서 그 땅에 있을 때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으로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현장기도이다. 이것을 땅밟기 기도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번역은 적절하지 않고 현장기도가 맞는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POWI를 통해 현장에서 기도하며 얻은 영성과 하나님의 임재를 여러 사역자들과 CPRT 팀들이 나누어 주었다. 이번에 방문한 지역은 터키를 제외하고는 모두 M센터였다. 앞으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현장의 전략적 거점을 마련해서 훈련과 많은 창조적인 사역들이 일어날 수 있는 베이스를 만들었는데 M센터 디렉터들의 사역나눔도 소개한다.

전체적인 4차 CPRT 보고서는 이번 CPRT 책임자인 김성간 목사가 작성했다. 첫째, 선교는 하나님께서 하신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게 당신의 마지막 영적 대추수의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신다. 셋째, 마지막 시대 선교는 주님의 교회들과 성도의 연합으로 이루어진다.

두혹 M 센터의 패트릭/안순자 디렉터는 북이라크 쿠르디스탄을 통해 시리아 난민들과 쿠르드 인들에 대한 복음전파와 교회개척을 꿈꾸며 특히 예지디 난민들에 대한 섬김을 함께 할 동역자들을 초청하고 있다. 이 지역을 방문한 김진영 선교사의 간단한 보고서도 싣는다. 그리스 아테네 M 센터의 데이빗, 레이첼 박 디렉터는 현장에서 진행되는 세 가지 사역을 나누면서 동역자들을 초청하고 있다. 첫째 사역은 사진 학교 사역이고 두번째 사역은 난민 필름 페스티벌이며 세번째 사역은 가정교회 개척이다. SWM 본부의 허창도 목사의 아테네 보고서도 싣는다. 이스탄불 M 센터의 허강한, 강안나 디렉터의 “영적인 부흥과 추수를 준비할 때” 보고서는 터키 현장에 긴급하고 중요한 필요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터키에서 일하고 계신지 알려준다.

터키 CPRT 보고서는 인도자인 이세웅 본부장 (편집인^^)이 썼다. 지난 16년의 터키 사역을 돌아보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 터키 교회개척의 의미를 돌아보고 성령께서 어떻게 한 사람 한 사람을 사용하시는지 터키를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친절하게 많은 이야기를 담았다. 거의 30 페이지에 달하는 이 보고서를 읽는 분들에게 성령의 조명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한다.

그동안 연재해 온 케빈의 성경이야기 “사울이었던 바울입니다”는 이번 호는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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